정부의 '돈줄 봉쇄'(주택담보대출 규제)와 실거주 요건 강화에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것)의 기세가 결국 꺾였다. 서울 강남에선 갭투자 거래가 반토막이 났고, 수도권과 세종 등에서도 투자 사례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갭투자 거래가 꽉 막힌 강남에선 되레 신고가 거래가 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3억 원 이하 아파트와 다세대·연립주택 시장엔 풍선효과(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오르는 현상)가 번지면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24일 미래통합당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갭투자 건수는 860건으로 6월(1885건) 대비 54.4% 줄었다.
갭투자 건수는 3억 원 이상 주택을 사면서 구매자가 낸 자금조달계획서에 '임대보증금 승계 후 임대 목적'으로 기재된 경우를 집계한 수치다.
서초구가 368건에서 224건으로 34% 줄었고, 송파구와 강동구가 각각 37%, 7.1% 감소했다. 특히 강남구는 500건에서 229건으로 54.2%나 쪼그라들었다.
갭투자는 서울 전 지역에서도 6940건에서 3638건으로 33% 감소했다. 이 기간 서울 매매거래량이 37%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서울 밖 경기(4908→3381건)와 인천(253→200건), 세종(434→279건)에서도 갭투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갭투자가 현저히 줄어든 건 정부가 지난 6·17 대책을 통해 내놓은 갭투자 방지 조치의 영향이 크다. 정부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후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서 3억 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을 곧바로 회수하도록 했다. 돈줄을 차단해 갭투자를 통한 불로소득 실현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경우 6개월 이내에 전입하도록 실입주 요건을 강화한 것도 갭투자자의 움직임을 위축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강남구의 갭투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건 6·17 대책에서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강남구의 거래량 중 갭투자 비중은 6월에서 7월 66.0%에서 56.5%로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정부가 돈줄을 막고, 실입주를 강화한 데다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주던 각종 세제 혜택마저 폐지하면서 갭투자 유인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커 시장 안정엔 일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거래량을 줄여 시장을 진정시킨 건 진정한 의미의 시장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잠실동에선 주공5단지 전용면적 76㎡형이 지난달 말께 23억 원에 팔리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형도 지난달 21일 23억 원에 거래됐다. 두 달 전 매매가(21억3000만 원) 대비 1억7000만 원 올랐다. 강남 내 갭투자는 줄었지만 가격 뜀박질은 여전한 셈이다.
3억 원 이하 아파트에 매수세가 몰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도봉구 창동 주공17단지 전용 36㎡형은 6·17 대책 이전 3억 원 밑에서 거래되다가 6월 말께부터 본격적으로 3억 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방학동 신동아아파트 전용 53.16㎡형은 지난달 3억5500만 원에 팔렸다. 종전 최고가는 6·17 대책 전에 나온 2억8800만 원이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갭투자가 줄면서 시장 안정엔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3억원 이하 아파트, 다세대·연립주택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보니 풍선효과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규제로 결국 하위계층이 피해를 보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