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인사들이 소아 성애를 일삼고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
일반 사람이라면 믿기 힘든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미국 극우 음모론자들인 ‘큐어넌(QAnon)’ 사이에선 상식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미국판 일베’라 할 수 있는 큐어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점차 그 세력을 넓혀가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이날 큐어넌과 관련된 계정 1만 개를 폐쇄하고 페이지와 게시물 등 연관 콘텐츠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트위터 역시 지난달 큐어넌의 음모론을 퍼트리는 계정 7000여 개를 제거했다.
소셜미디어 기업이 큐어넌 단속에 나선 이유는 이들이 반사회적인 메시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큐어넌은 2017년 미국의 극우 성향 사이트 ‘포챈’에서 출발한 세력으로, 민주당과 연결된 ‘딥스테이트’라는 권력 집단이 아동 성매매를 일삼으며 아이들의 피를 마시는 악마숭배 의식을 치른다고 믿는다. 큐어넌이 지목한 딥스테이트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배우 톰 행크스, 프란치스코 교황 등이 포함돼있다. 이 밖에도 반동성애적 글이나 인종차별적인 게시물이 흔하게 공유된다.
큐어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딥스테이트의 범죄 사실을 밝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17’이라는 숫자를 말할 때마다 자신들에게 암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큐어넌(QAnon)’의 ‘Q’는 알파벳의 17번째 글자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것은 ‘인신매매 아동을 풀어줬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들은 현실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장에서는 큐어넌을 상징하는 Q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4월 일리노이주의 한 큐어넌 신봉자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를 살해하겠다며 칼 12자루를 들고 뉴욕시로 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5월 큐어넌을 반사회적 테러 위협 집단으로 지목했다.
큐어넌은 공식적인 회원 수를 집계한 적이 없어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큐어넌 페이지는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트위터에 퍼져있는 큐어넌 계정 수만 해도 15만 개에 달한다. 페이스북은 내부 조사 결과 수천 개의 큐어넌 계정이 있으며 구독자 수만 해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자택 격리 조치가 시행된 이후 페이스북 내 주요 큐어넌 그룹의 구독자 수는 600%나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큐어넌을 단순히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나는 큐어넌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 점은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그저 나라를 사랑하고 시카고와 포틀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기 싫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두둔했다. 시카고와 포틀랜드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촉발된 폭력 사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극우 음모론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조셉 우신스키 마이애미대학 정치학 교수는 “큐어넌은 단순히 음모론이 아니라 종교가 됐다”며 “인터넷 환경이 음모론의 발전과 진화 방식을 바꿔놓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