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준중형급 전기차를 양산했다.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SM3 Z.E.는 택시와 카셰어링 등에 사용되며 초기 전기차 보급에 역할을 다했다.
연식변경으로 주행거리를 200㎞(1회 충전) 이상까지 늘렸지만, 경쟁사의 추격은 맹렬했다. 현대차 코나와 아이오닉, 기아차 니로와 쏘울, 한국지엠 볼트 등 수많은 전기차가 등장하며 SM3 Z.E.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르노삼성은 반격 카드로 이미 유럽 시장에서 실력이 증명된 ‘르노 조에(ZOE)’를 선택했다.
조에의 차체는 아담하다. 소형 SUV와 비슷한 크기다. 전장(길이)은 4090㎜로 현대차 베뉴보다 50㎜ 더 길고, 전폭(너비)은 1730㎜로 40㎜ 더 짧다. 전고(높이)는 1560㎜로 비슷하다.
조에의 외관 전면부에도 르노의 디자인 정체성인 ‘C자형 주간주행등’이 자리했다. 다만, SM6와 QM6, XM3, 르노 캡처에 공통으로 적용된 형태와 차이가 있어 신선하다. 헤드램프를 감싸는 주간주행등은 후드의 굵은 윤곽선, 로장주 엠블럼과 어우러지며 날렵한 인상을 준다.
측면에는 세 개의 캐릭터라인이 각자 엇갈리게 놓여 입체감을 더하고, 마름모꼴 후면 리어 램프는 동급 최초로 LED 다이내믹 턴 시그널 램프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모습을 완성한다.
시승에 사용한 차는 최상급인 인텐스(INTENS) 트림으로, 실내는 XM3와 거의 유사하다. 큼직한 10.25인치 클러스터와 터치 방식의 9.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자리해 편리한 조작을 돕고, 공조 기능은 별도의 피아노식 버튼으로 마련돼 누르는 재미가 있다. 르노 캡처에 적용된 플라잉 콘솔을 갖춰 수납공간도 늘렸다.
운전석은 차체 크기에 비해 답답하지 않고 시야도 충분히 확보된다. 다만, 2열은 키가 180㎝인 성인이 앉기에 여유롭진 않다. 무릎과 머리 공간이 꽉 찬다. 시트 각도 조절도 레버로 돌려야 하는 수동식이다.
조에는 100kW급 R245 모터를 얹어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25kg.m의 힘을 낸다. 2.5리터 가솔린 모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시원하게 속도를 낸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지 않고 부드러워 조작하기 편하다.
조에는 LG화학이 만든 54.5kWh 용량의 Z.E. 배터리를 얹어 1회 충전 시 309㎞를 갈 수 있다. WLTP 기준으로는 최대 395㎞다.
시승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출발해 북악스카이웨이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약 22㎞ 구간에서 이뤄졌다. 출발 당시 트립에 찍힌 주행가능 거리는 321㎞였다. 에어컨을 22도에 맞추고, 오디오도 틀며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 운전을 시작했다. 중간 지점인 북악산 팔각정까지 향하는 길은 오르막과 급커브의 연속이지만, 조에는 휘청거림 없이 날렵하게 차체를 움직인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팔각정을 지난 뒤부터는 전자식 변속기를 조작해 ‘B-모드(B-Mode)’를 활성화했다. B-모드를 작동하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 마치 브레이크를 밟은 듯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속도가 줄어들 때마다 회생 제동이 걸리며 배터리도 충전된다. 이 기능 덕에 회전이 계속되는 구간임에도 평지에 내려올 때까지 브레이크를 한 번도 밟지 않았다. 발이 편했고 운전의 피로도도 덜했다.
다만, 이 기능을 사용해도 시속 10㎞ 이하로 속도가 내려가진 않는다. 신호에 걸리면 브레이크로 제동을 해줘야 한다.
도착 후 트립에 찍힌 주행 가능 거리는 323㎞다. 왕복 22㎞ 거리를 운전했지만, 되레 갈 수 있는 거리는 2㎞가 늘었다. 1주일에 충전을 한 번만 해도 도심 출퇴근에 지장이 없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 이해가 갔다.
조에는 3개의 트림으로 출시되며 가격은 △젠(ZEN) 3995만 원 △인텐스 에코(INTENS ECO) 4245만 원 △인텐스(INTENS) 4395만 원으로 책정됐다. 보조금을 적용하면 서울시를 기준으로 최저 2809만 원부터 구매할 수 있다.
회사가 설정한 조에의 목표 고객층은 ‘도심 운행을 많이 하는 젊은 세대’, ‘전기차에 입문하는 운전자’다. 이들에게 손색없이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이 모르고 지나치기에 아까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