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과 ‘사회적기업’, 도무지 만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 단어가 만났다. 2018년 겨울에 데뷔한 4인조 그룹 ‘플로어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학교폭력 문제를 노래한 곡을 노래하는 등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제1 목표로 삼았다. 플로어스가 속한 소속한 엶엔터테인먼트는 연예기획사 최초 사회적기업이다.
이철우(41) 엶엔터테인먼트 대표는 SK그룹의 사회공헌재단인 행복나눔재단 출신으로 2013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문화예술 후원기관인 한국메세나협회에서의 인턴 경험과 행복나눔재단, 이후 광고대행사에서 경력이 합쳐져 국내 최초 엔터테인먼트 분야 사회적기업을 세울 수 있었다. 5일 이 대표를 서울 성북구 정릉에서 만나 연예기획사로 거듭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 봤다.
엶엔터테인먼트가 처음부터 아이돌에 주목한 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창업 초반에 다큐멘터리 제작을 포함해 문화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일에 힘썼다. 괄목할 성과도 냈다. 이 씨의 데뷔작이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사라질 것들, 살아갈 곳들’은 2016년 인디다큐페스티벌에도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다큐 연출·제작이 쉽게 수익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이 대표는 “비즈니스와 이어지는 콘텐츠를 고민하다 연예기획사를 생각하게 됐다”며 “아이돌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도 마음을 끌었다”고 밝혔다.
2016년 봄부터 ‘플로어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반대, 몸과 마음이 아파서 중간에 하차한 팀원들 등 이유로 팀은 만들어졌다가 다시 깨지곤 했다. 200명이 넘는 오디션을 보면서 이 대표는 적게는 1시간, 많게는 며칠에 거쳐 면접을 봤다. 여타 기획사들이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평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춤, 노래, 외모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였다”며 “지향점이 같아야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강조했다.
2018년 12월 12일 쇼케이스가 열린 그 날, 이 대표는 창업 6년간의 피로가 씻기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긴 연습 기간을 버틴 멤버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람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멤버 중 2명은 중학생 때부터 다른 기획사에서도 연습한 적이 있는데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곡절이 많았다”며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했던 상황을 이겨내 준 데 대한 감사함도 느꼈다”고 했다.
플로어스만의 경쟁력은 사회적기업이 배출한 그룹답게 메시지를 강조한 노래를 한다는 점이다. 2018년 12월 발매한 ‘플로어[스]쿨’ 앨범이 대표적이다. 이 앨범에 담긴 노래들에는 학교폭력의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녹아 있다. 어릴 적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멤버 수화가 직접 작사에 참여했다. 내달 초에는 ‘기억’을 주제로 한 앨범이 나올 예정이다.
엶엔터테인먼트는 아직 외부 투자를 유치한 적이 없다. 사회적기업으로서 국비나 시비 지원은 받았지만,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아이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외부 투자자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터지면서 엶엔터도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올해는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코로나19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이 대표는 올해 매출이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연예기획업 외에 사회적 기업과 관련해 행사들을 대행하고, 그 매출로 아이돌 양성에 투자하는 구조였는데 행사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매출도 직격탄을 맞았다. 대표적인 행사가 성북구에서 하는 사회적경제 공공구매 박람회다.
그는 “6~7년 동안 진행했던 행사도 올해는 열리지 않았다”며 “다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연예기획사업에 더 집중하는 계기는 됐다”고 말했다. 즉, 행사 대행에서 연예기획으로 사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아이돌산업에 관해 “혹자들은 레드오션이라고 단정하지만, 오히려 해외시장까지 고려하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플로어스도 데뷔 초 폴란드에서 1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팬클럽을 만들었다”며 “K팝의 수혜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아이돌을 선망하는 청소년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그는 “청소년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존재가 부모님 다음 아이돌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며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두 번째는 아이돌 산업의 부정적인 면을 줄이는 것이다.
그는 “더는 엔터 업계의 사건 사고를 신문의 사회면에서 보고 싶지 않다”며 “엔터 산업을 둘러싼 상업성 등 고정관념도 탈피하고 싶다”고 했다. 부모들의 반대로 연습생들을 잃으면서 더 절감한 부분이다. 그는 “엶이 배출한 아이돌이 선례가 돼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작게나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