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사태를 회상하며 복수의 금융감독원 임원이 한 말이다. 키코 사태를 마무리지은 지금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금감원 편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 임원들이 이 같은 말을 하며 씁쓸해하는 이유가 있다. 키코 재조사는 금감원이 독자적으로 밀어붙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끌어온 키코 분쟁 해결은 여당의 공약사항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9월 키코 사태를 ‘금융권 3대 적폐’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재조사 추진의 뜻을 밝혔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키코 재조사 카드를 꺼내든 것도 여당과 정부의 뒷심을 기대했을 것이다.
키코는 결국 금감원의 권위와 정당성에 적잖은 상처를 내면서 사실상 마무리됐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은 일성하이스코 등 4개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한 금감원의 조정안을 수용치 않기로 결정했다. 금융위도 정부도 슬그머니 발을 빼니, 국책은행마저도 뒷걸음만 치고 있다.
은행권은 자율협의체를 구성해 145개 기업에 대한 자체적인 키코 배상을 논의한다지만, 금감원의 조정안과 달리 배상비율을 비롯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논의 결과를 공개할 의무도 없는 만큼 실질적으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비자보호를 강조한 금감원만 머쓱해진 것이다.
기나긴 외로운 싸움을 했다. 금감원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젠 여당과 정부가 나서서 공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끝까지 모른 체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조는 여느 때보다 현 정부에서 강조한 사항이다.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는 현 정부가 금감원을 모른 체하는 이유가 의아한 까닭이다. 흔들리고 있는 금감원을 정부가 잡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