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알려주는 배당의 본질과 논점

입력 2020-07-02 08:23 수정 2020-07-0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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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2가지 방법이 있다. 계보를 따라 올라가 ‘기원’을 탐구하거나 개념의 ‘정의’ 자체에서 찾는 것이다. 미국 정치제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그 원형인 로마의 정치, 즉 아우구스투스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키케로가 정의한 공화정을 이해해야 한다. 로마 시민권과 개방성의 비밀을 알고 싶으면 이주민, 심지어는 이웃 지역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로 구성된 초기 로마의 형성과정을 봐야 하듯 말이다. 이러한 본질의 원리는 역사 뿐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적용된다. 배당의 ‘본질’과 주요 논점을 파악하기 위해 주식회사와 배당의 ‘기원’을 알아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 전인 1602년, 해외상인들이 만든 느슨한 형태의 프리컴퍼니(Precompany)와 구별되는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이하 VOC)가 탄생했다.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데베이크 페트람은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민 스포츠였던 주식 투자 상황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옵션과 선도계약, 무차입 공매도까지 등장했던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의 상황과 VOC 없이 현재 자본시장의 발전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원형(原形)은 본질에 가깝고, 본질을 알 수 있다면 충분히 현재적이다.

수익은 생겼는데

동인도회사(VOC)는 총 46개의 정관 조항으로 출범했는데, 정관 제17조는 ‘초기 자본금의 5%의 수익이 생길 때 마다 배당을 한다’고 규정했다. 즉, 배당은 투자한 회사에 ‘이익’이 나면 투자자는 ‘투자지분 대비 이익’에 비례해 지급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규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최초의 배당금은 설립 후 8년이 지난 후인 1610년에서야 지급됐다. 배당 시기는 전적으로 이사진이 정했기 때문이다. 주권이란 개념이 구체적으로 형성되기 전이어서 주주는 단지 ‘주식의 주인’일 뿐 회사의 주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현대 미국 판례법에서 발달한 이사진의 ‘경영판단의 원칙’과 경제학상 ‘대리인 비용’ 사이의 긴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에도 VOC의 짜디짠 배당정책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때로는 폭발하기도 했다. 급기야 1622년에는 소액주주 운동가들이 ‘주주권리 확보’를 위한 팜플릿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상의 주주권 행사나 주주 캠페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400년이 지난 뒤에도 이러한 상호 긴장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을 보면 배당을 둘러싼 이해의 대립과 기업 지배구조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게 분명하다.

VOC 주주들은 이색적인 상품들을 가득 싣고 아시아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향한 동인도회사의 배를 보더라도, 배당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VOC는 사업 초반기의 회사로, 항해 중 조난이나 난파 등 리스크는 있지만 충분한 성장이 기대돼 수익이 생기면 바로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기업과 산업의 주기에 따라 ‘투자 기회’가 많은 ‘초기’에는 배당을 적게 하지만, 기업이 점차 ‘성숙기’에 도달하고 투자기회가 적을수록 배당을 증가시킨다. 바로 배당의 ‘수명주기이론’(Fama and French, 2001)이다. 하지만, 경영자 개인의 사적 이익의 유인에 따라 배당을 지나치게 미루거나 과소하게도 지급하기도 한다. 이 경우 유보된 이익이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투자되거나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에 활용될 수도 있다(대리인이론, Easterbrook, 1984).

배당을 받을까? 유보할까? 무엇을 봐야하나?

VOC에서 배당을 지급하기 시작했을 때 1차 배당은 지분 장부가의 75%에 해당하는 ‘향신료’였고 두 번째 배당은 장부가의 50%에 해당하는 ‘후추’였다. 현재 기업의 배당금은 현금으로 지급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17세기 당시에는 현물배당을 현금배당과 혼용하는 경우가 흔했다. 한국도 상법상 정관으로 정할 경우 얼마든지 ‘현물배당’을 할 수 있다. 다만 현금배당이 주를 이루고 유동성이 필요하거나 기타 이유로 주식배당을 할 뿐, 필자가 지난 6년간 다룬 3600여개의 주주총회 중 현물배당 안건은 엘리엇이 삼성물산에 대해 요구한 것 외에는 아직 본적이 없다.

VOC가 본격적으로 배당을 개시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제 주주들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지금 바로 배당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현물배당을 찾아가지 않고 1612년으로 예정된 회사 ‘청산 시’에 그만큼의 돈을 더 받아갈 것인가 선택해야 했다. 눈 앞에 보이는 ‘투자기회’를 위해 ‘이익을 유보’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부채’를 끌어올 것이냐의 자본조달과 ‘자본구조 효율화’(ROE)의 문제이다. 동시에 투자자의 투자효율, 즉 ‘총수익률’의 문제이기도 하다. 17세기 초반 당시 네덜란드 1년 만기 국채이자율이 6.25%로 높았으므로, 바로 찾아가지 않을 경우 매년 6.25%만큼 ‘기회손실’이 발생해서다. VOC의 사업 전망 상 ‘예상현금흐름’이 이자율 보다 작다면, 배당을 받은 후 수익률이 높고 더 안전한 국채를 사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여기서 배당의 또 다른 논점들이 도출된다. 투자자의 ‘배당선호’와 배당 프리미엄, ‘장부가 대비 시가 비율’(PBR) 문제까지 포함한다. 배당을 맞춤형 호텔 음식 서비스처럼 투자자의 니즈에 맞게 고려하는 ‘배당 Catering 이론’이다(Baker and Wagler, 2004). 이 지점에서 배당 지급의 문제는 ‘주주요구수익률’, 투자여부와 투자에 대한 시장의 전망과 평가를 알아볼 수 있는 노벨상 경제학자 ‘Tobin’s Q‘ 논의와 직결된다.

배당은 좋다. 하지만...

VOC의 배당 효과는 과연 어땠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배당지급 이후 주가는 급격히 상승했다. 배당 소문이 돌자마자 투기꾼들의 게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분석은 다르다. 17세기 네덜란드 경제 상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로데베이크 페트람은 회사의 ’수익성 향상‘과 더불어 회사의 ’배당정책 변화‘를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1640년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최고의 경제 호황기를 누리고 있기도 했지만, 1630년대부터 본격화된 VOC의 주주친화적인 배당정책이 주가를 더욱 끌어올린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일갈한다. 우연으로 보이는 필연이었다.

유사한 사례를 20세기 초에도 찾을 수 있다. 1933년10월15일, ’내셔널 디스틸러스 프로덕트‘사는 금주령 기간 동안 창고에서 묵혀있던 16년산 위스키를 주주들에게 보유주식 5주당 24파인트씩 지급했다. 이로 인해 내셔널 디스틸러스 주가는 그 해 초 19달러에서 1933년 9월 111달러까지 급등한 바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주가의 단기 급등을 위한 것이든, 지배주주 개인적 사정 때문이건 과도한 배당은 오히려 장기 기업가치를 해친다는 것이다. ’적정배당‘은 과소(적정수준 미만)뿐만이 아니라 과대(적정수준 초과)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배당은 주주가치의 원천

이렇듯 배당에 대한 판단은 관련 재무지표와 숫자를 근거로 한 정량적인 접근이 기본이다. 하지만, 적정 배당이라는 게 정답이 아닌 ’관점에 따른 판단‘의 문제이고, 특히 ’적정‘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모호하며 성립하기 어렵다. 오히려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므로, 판단의 정합성을 위해 일관된 기준과 철학이 필요하다. 당 연구소에서 정량적 판단을 위해 별도로 배당모형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정량적 판단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배당은 회사의 지배주주 상황이나 배당정책에 의존하기 마련이므로,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를 포함한 회사만의 사정 그리고 시장 상황과 불확실성 등 정성적인 검토까지 있어야 온전한 판단이 된다.

나아가 배당은 한 기업을 넘어 주식시장, 더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의 문제이므로, 관련 제도와 시장 참여자들의 요구와 행동까지 감안하는 게 배당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이다. 즉, 배당은 기업 및 주주의 문제이고, 제도 및 시장의 문제이며, 정량적인 수익과 지표의 문제이자 정성적인 권리와 합리적인 요구의 문제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반 사정을 고려한 온전한 판단, 과실의 합리적인 공유, 그로 인해 정량적이자 정성적인 ’주주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배당의 본질이다. 회사에 이익이 났으니 지급하는 단순 떡고물 수준이 아닌, 투자자가 향후 ’청산받을 대가‘를 미리 앞당겨서 지급받는 것이다. 항해 단위의 프로젝트성 사업이자 원정이라는 전근대적 사업모델임에도 불구하고 200년이나 유지됐던 동인도회사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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