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정상들에게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에 관한 협조를 당부하고, 이를 1일 청와대가 전격 공개한 것은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북한의 반응을 지켜본 뒤 미국과의 향후 협의에서 방향을 잡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일단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한미간의 공감대는 어느정도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선 전 만남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감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런 말씀드린 적 없다" 면서도 "청와대와 백악관, 안보실이 소통하고 공감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역시 중국과의 갈등을 돌파할 외교적 카드로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이날 한 포럼에 참석해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미국 쪽에서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고무적인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 국장인 해리 카지아니스가 폭스뉴스에 쓴 칼럼을 언급하며 “트럼프가 대선에서 불리한 구도에 있고 외교적 성과가 없는데, 대선 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외교적 돌파구를 만든다고 하면 중국을 대하는데 있어 미국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카지아니스 국장이 저한테 보낸 이메일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백악관도 그렇고 공화당 쪽에서도 긍정적인 기류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걸 엮어서 봐야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미국측이 문 대통령의 바람에 응할지는 다음주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비건 부장관은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달 29일(현지시간) 브뤼셀포럼 화상 행사에 참석해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에서 대면 정상회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마도 대선 전에 그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의 문이 열려있다"고 밝히며 북미간 대화 채널이 유효하다고도 했다. 비건 부장관은 "외교를 향한 문을 계속 열어둘 것"이라면서 "미국과 북한이 양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을 만들어낼 시간이 여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합의를 하는 것은 미국한테만이 아니라 북한에 달려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아주 견고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제시했으며 북한이 우리와 협상에 관여한다면 아주 빨리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극적인 반전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있다면 1~2차 북미 정상회담때와 마찬가지로 '깜작 회동'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건 부장관이 어렵다고 한 것은 '대면 회담'인 만큼 '화상 회담' 등을 통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