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걸렸을 때 항생제가 들어간 약을 자주 사용하면 병은 잘 낫지 않게 되고 내성만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더 센 약을 사용해야 하는 부작용만 초래하게 되죠. 현재 부동산시장이 딱 이 상황입니다. 정부의 규제 남발이 시장의 내성만 키우면서 어떤 약을 써도 잘 듣지 않게 됐습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불안 조짐이 나타나자 정부가 또다시 규제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역대급' 규제로 불렸던 지난해 12·16 대책보다 더 강력한 대책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시장은 대책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벌써 고개 든 '규제 무용론'
그간 반복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불신과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남발이 시장 내성만 키웠다며 이번 정책 역시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불과 몇 주 전만해도 정부는 12·16 대책 효과로 전국 집값이 안정세를 찾았다고 자평했다. 민간 기관인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조사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4.9% 상승에 그쳤다. 지난해 5월부터 6개월 동안 5.9%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P)나 상승세가 둔화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한국감정원의 전국 주간 주택 가격 동향 조사(지난 8일 기준) 결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02% 올라 13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서울 25개구 가운데 중구(-0.01%)를 제외한 모든 구에서 집값이 오르거나 보합(0.00%)을 기록했다
특히 강남구가 0.02% 올랐는데, 이는 지난 1월 둘째 주 이후 넉 달여 만의 상승이다. 송파구도 전주(-0.03%) 대비 0.05% 상승했다. 다만 서초구와 강동구는 각각 전주(-0.04%) 대비 0.00%로 보합으로 전환했다.
수도권은 일찍감치 시장 과열 조짐을 보였다. 정부가 이번 부동산 대책을 통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 군포ㆍ안산ㆍ시흥ㆍ오산시와 화성 동탄1신도시 등은 올 들어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조정대상지역 지정의 근거가 되는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을 살펴보면 군포시는 9.44%, 안산시는 6.49%, 시흥시는 4.07%로 급등했다.
서울에서도 9억 원 이하 중저가 주택이 많은 동대문·성북·노원·강북구 등 비강남권에서 풍선효과로 집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동대문과 성북구는 12·16 대책 이후 지난달까지 10% 넘게 올랐고, 노원과 강북구도 각각 8.0%, 7.7% 상승했다.
◇"반시장적 대책 불안만 커져… 풍선효과 등 악순환 반복"
각종 규제를 총망라한 초유의 부동산 종합대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12·16 대책도 약발이 6개월도 안돼 '약발'이 떨어졌고, 정부는 또 다시 강력 규제책을 꺼내들 것이라고 예고한 상황이다.
그러나 시장은 대책 발표 이전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번 대책에도 주택 공급 확대라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 수요만 억제하는 반(反)시장적 내용이 주로 담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집값이 많이 오른 곳을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돈줄'(주택담보대출ㆍ전세자금대출)도 더 죈다고 해도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수요자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내년부터 서울 등 수도권 입주 물량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이 무주택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곧 꺼내놓을 수요 억제 대책은 집값을 반짝 움츠들게 했다가 다시 뛰어오르는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간 부동산 대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책으로 풍선효과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규제지역 추가 지정, 대출 제한 등의 대책을 통해 시장을 자꾸 규제하면 집값이 저평가됐거나 덜 오른 비규제 지역으로 수요가 몰릴 수 있다"며 "이런 풍선효과를 막을 수 있는 종합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