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개인당 1200달러를, 홍콩 정부는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1만 홍콩달러를 각각 지급하거나 할 계획이다. 스페인 정부도 빈곤층 23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최저생계비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호주 등도 재난지원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번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가 촉발한 엄청난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일회성 대책이며 일부 국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기본소득제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국가가 엄청난 재원을 들여 국민 거의 대다수에 현금을 직접 지급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기본소득제 실험을 펼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만일 이 제도가 실제로 펼쳐지면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또 앞으로도 일회성의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본소득제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사회와 경제 전반을 뒤흔들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그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기본소득제가 잘 풀리면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좀 더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여유 있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갑질’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또 기본소득제는 좌파만의 논리도 아니다. 우파 진영 일부에서도 방만한 복지예산을 줄이는 차원에서 기본소득제를 찬성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2년 전 기본소득제 실험을 한 것도 우파 정부였다.
반대론자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 개개인에게 소액을 지급하더라도 국가 전체로 보면 어마어마한 재정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결국, 증세를 하거나 국가가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조삼모사(朝三暮四) 상황과 마찬가지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기본소득제와 비슷하게 1년에 한 번 전 주민을 대상으로 ‘영구기금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와 석유 등 풍부한 자원 때문에 가능한 얘기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7년 주민 전체가 아니라 저소득층 4000명을 대상으로 매월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 원)를 지급하는 3년간의 기본소득제 실험에 들어갔지만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며 이를 1년 만에 포기했다.
결국 찬반론자 모두 각각 나름의 타당함을 갖고 있어 책상머리에서 논의를 해봤자 결국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그러기에 코로나19가 준 이번의 귀중한 실험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두 진영 모두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이미 재난지원금 형태로 지금까지 진행됐던 일들이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재정 부담은 어떻게 되는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과거 역사적 위기는 변화를 가져왔다. 1930년대 대공황은 복지 프로그램을 탄생시켰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시스템은 이전보다 더욱 견고해졌다. 이번 코로나19가 일으킬 변화에 기본소득제가 포함될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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