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명품의 콧대가 갈수록 높아진다.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손님은 줄었지만, 명품만큼은 예외다. ‘명품이 떴다’ 하면 줄 서서 구매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백화점 세일 기간에도 명품만이 유일하게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전파가 한창인 와중에도 지난달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전국 유명 백화점에서는 인상 전 샤넬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매장 개장 전부터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면 뛰어 들어가는 이른바 ‘오픈런’이 벌어졌다. 이달 3일에는 면세점의 악성 재고를 털기 위해 면세점 재고 물품에 대한 온라인 판매를 진행됐는데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는 120만 명이 몰려들며 하루 만에 전체 물품의 90%가량이 동났다.
상황이 이러니 유통채널의 주도권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유통업체의 경쟁력은 결국 명품으로 좌우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명품은 주로 고가인 탓에 예전엔 4050 중장년층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됐지만, 최근 들어 2030 젊은 세대의 유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올해 1~4월 명품 장르 연령대별 매출 신장률을 보면, 40·50세대는 각각 6%, 0.3%에 그쳤지만, 20대 이하 세대는 23.3%, 30대는 28.4%로 신장 폭이 크게 차이가 났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올해 1~5월 명품 장르의 매출 신장률을 보면 20·30세대는 각각 25.1%, 26.1%를 기록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명품 사랑’ 덕에 유통업체들의 명품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매출이 지속해서 빠지는 지방 백화점이나 신규 고객 확보가 필요한 오픈 백화점의 경우 명품 유치에 사활을 걸지만, 사실상 명품 유치는 쉽지 않다.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은 3대 명품 중 하나인 ‘에르메스’를 유치하는 데 3년 이상 걸렸다. 2016년 12월 오픈한 신세계 대구점은 이르면 개점 4년이 되는 올해 말 에르메스 매장을 열 예정이다. 올 2월 개장한 갤러리아 광교점은 올해 안에 3대 명품 중 ‘루이비통’ 입점을 예고했고, 나머지 2개 브랜드(샤넬, 에르메스) 입점은 아직 협의 중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어떤 명품 브랜드를 유치했는지에 따라 유통업체의 위상이 달라진다. 또 최고급 브랜드를 유치해야 그 아랫급 브랜드 유치가 쉬워지고, 전체적으로 상급 브랜드가 모인 매장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명품을 쫓는 유통업체와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명품과의 관계는 명품이 이른바 ‘갑’이다.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고 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선 ‘관리’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매장 인테리어를 예로 들면 보통은 브랜드에서 인테리어 리뉴얼 비용을 100% 부담하고, 너무 영세한 업체일 경우 5:5 정도로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파워가 있는 명품은 리뉴얼 인테리어 비용을 유통업체가 부담하는 게 대부분인데 그 비용이 50억~100억 원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콧대 높은 명품의 위상은 이번 재고 면세품 판매에서도 나타났다. 면세점들은 코로나19로 쌓인 면세품을 백화점이나 아웃렛 등 일반 유통채널에 팔 때 브랜드와의 협상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명품은 희소성을 브랜드 가치로 보는 만큼 일반 유통채널로 판매가 풀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고 면세품을 처음 판매했던 신세계인터내셔날과 SSG닷컴은 관련 내용을 따로 홍보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명품 브랜드 측이 홍보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을 경험하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고,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명품 수요는 커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이 아니라 립스틱, 스니커즈, 모자 등 비교적 저렴한 아이템부터 경험하기 시작한 20·30세대가 점차 명품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과 아이템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젊은 층의 명품 소비 현상에 대해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시험과 경쟁 속에 자라 온 젊은 세대는 계속 경쟁의식을 지니며 살고 있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명품이 지닌 상징적 의미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며 “한 번에 거액의 돈을 쓰는 ‘플렉스’도 하나의 트렌드가 됐는데 이조차도 트렌드에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쫓고 있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