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1분기 기업 등급 상하향배율이 2000년대 들어 최저점 수치인 ‘0’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레딧업계 전문가들은 2분기 이후 기업 신용등급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져 연간 등급 상하향배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6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업 등급 상하향배율은 ‘0’을 기록했다. 등급이 상승한 기업 수를 등급이 하락한 기업 수로 나눈 등급 상하향 배율은 수치가 1배 미만이면 신용등급 하향 건수가 상향 건수보다 많다는 의미다. 또 수치가 낮을수록 하향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연간 등급상하향배율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에 0.8배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11년 7.1배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으나 2013년부터 신용등급 하락 우위기조가 이어져 2015년과 2016년 저점인 0.2배를 기록했다. 이후 2018년부터 하락우위 강도가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으나 올 1분기 코로나19의 여파로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치인 0배를 5년 만에 다시 기록했다.
1분기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은 한 곳도 없는 반면 5개 업체의 등급이 하락했고 1개 업체가 부도가 났다. 투자등급군에서 신용등급이 하락한 업체는 OCI와 LG디스플레이이며, 투기등급군에서는 에코마이스터, 흥아해운, 현진소재 등 3개사의 등급이 하락했다. 에이유는 부도가 발생했다.
등급 상향 건수에서 등급 하향 건수를 뺀 값인 등급변동성향도 음의 값(2019년 1분기 -0.28% 2020년 1분기 -1.33%)이 확대됐다. 등급 상승사가 많으면 양으로, 하락사가 많으면 음으로 나타난다.
크레딧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뀐 기업들은 2분기 실적이 부진할 경우 등급하락 가능성이 높아 2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7~8월 이후에는 더욱 신용등급 하락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한기평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부정적 전망 부여 업체수(22개사)가 긍정적 전망 부여 업체수(15개사)를 상회했다.
최재헌 한기평 평가기준실 전문위원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급 악화 등으로 국내 주요 산업의 사업환경이 대부분 비우호적인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부정적 영향이 확대됨에 따라 향후 등급변동의 방향성은 하락 우위 기조가 크게 강화될 것”이라며 “2분기 들어 등급과 등급전망이 하향(부정적 검토 포함)이 조정된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1분기 추세보다 신용등급 하향이 늘어날 경우 연간 등급 상하향배율도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 시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의 금리차)는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확대됐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시장의 우려가 있다”며 “올해 등급 상하향배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을 각오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