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 ‘장고’가 깊어지면서 채권단인 국책은행도 덩달아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 되고 있다. HDC현산이 이번 인수전에서 끝내 백기를 들게 될 경우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지게 될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HDC현산은 지난달 말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일정을 ‘거래종결 선행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부터 10일이 경과한 다음 날 혹은 당사들이 합의하는 날’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앞서 HDC현산은 지난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 30.77%를 3228억 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하면서 4월 30일까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시했지만, 이 기한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여기에 현산과 함께 재무적 투자자(FI)로 아시아나 인수에 참여한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중국 안방보험과 맺었던 7조 원 규모의 미국 호텔 매매계약을 돌연 취소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는 점도 포기설에 불을 붙이고 있다. 현재 호텔 매매계약과 관련해 7000억 규모의 계약금이 물려 있는 상태기 때문에 FI로서 역할을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미래에셋 측은 7000억 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 중국 안방보험에 맞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HDC현산이 2500억 원 규모의 이행보증금을 포기하고서라도 아시아나항공 딜에서 빠져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나오고 있다. 한 IB 업계관계자는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하는 것도 경영적 최선의 판단이 될 수 있다”면서 “재무적으로 봤을 때 이행보증금을 포기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재계에서는 HDC현산이 과거 한화그룹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화케미칼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다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이행보증금 3150억 원에 대한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9년여간의 소송을 통해 절반이 넘는 1951억 원을 돌려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딜을 포기한다면 당연히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이행보증금의 절반 이상 혹은 전부를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다면 코로나19사태라는 외부적 요소보다는 기업실사 당시 미처 드러나지 않고 공개되지 않았던 재무적 결함을 쟁점 이슈로 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DC현산의 포기설이 힘을 받다 보니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결국 아시아나항공 대주주로 올라서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산은은 한화그룹의 인수 포기로 자회사로 품게 된 대우조선해양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에 총 1조6000억 원을 지원했으며 올해 1조7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HDC현산이 이번 인수전에서 끝내 백기를 들게 될 경우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지게 될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으로서는 압박을 하든 달래기를 하든 HDC현산이 완주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