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0조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이 본격 운영됨에 따라 지원 업종·기업 선정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업종 간의 구분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부가 결정되면서 향후 혜택을 받는 기업과 그렇지 못하는 기업 간의 형평성 논란도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위기 산업에 대해 공적자금을 무슨 기준으로 지원할 것인가도 숙제로 남게 됐다. 실질적인 구분을 마련하지 않은 채 도입될 경우 정부가 한계기업까지 지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7대 기간산업 구분… 업종 간 형평성 논란 = 금융위원회는 6일 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수혜 업종을 △항공운송업, 항공 운송지원 서비스업 △해상운송업, 항구·기타 해상 터미널 운영업, 수상 화물 취급업 △기계·장비제조업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 △선박·보트 건조업 △전기업 △전기통신업 등으로 우선 규정했다.
자금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는 업종의 경우는 소관 부처의 요청에 따라 금융위가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 여파가 전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는 만큼 포괄적으로 업종을 규정한 데 이어 유연한 적용을 위해 당국에도 여지를 남겨 두었다. 조만간 최종안이 확정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일부 빠져 있는 업종이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업종 간의 형평성이다. 우선 ‘업종 구분’은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혜택을 받는 기업과 수혜에서 제외되는 업종 간의 온도 차이를 필연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다. 업종으로 뭉뚱그려 구분된 탓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업종에 속하지 않으면 지원에서 배제되고 반대로 사정이 낫더라도 지원 업종에 속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가령 올해 1분기 흑자전환이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는 전력 및 통신업종에 속한다. 한전이 원한다면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자금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자금 손실이 예상되는 정유업은 그렇지 않다. 최근 정유업은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영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만약 시행령 최종안에서도 정유업이 빠진다면, 이들은 금융당국의 자율성에 기대야 한다.
정유업을 비롯한 산업들이 빠진 데는 일종의 ‘경영 여건’이 어렵지 않다는 논리가 반영됐다. 이들은 단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의미다. 기반이 무너진 항공업계나 해운산업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법은 코로나 위기로 인한 업종을 정확하게 나누지 못한다. ‘코로나 여파가 해당 산업의 기반을 무너트렸냐’는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기간산업처럼 덩치가 큰 경우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검토하는 것도 현명하다”며 “사이즈가 큰 경우는 미리 검토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살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 지원은 코로나 때문? = 구분의 모호함이 크게 드러나는 기업이 두산중공업이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코로나 사태로 자금경색을 겪었다. 전단채 등의 차환 발생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에 두산중공업은 주채권 은행인 산은과 최다 채권자인 수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후 산업경쟁력 강화 회의에서 두산중공업에 대한 1조 원 지원을 공식화했다.
산은도 밝혔듯,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자금 조달의 경로를 막았고, 이로 인해 정부가 자금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따라서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은 완전히 ‘코로나 위기’로 인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두산중공업 지원을 코로나 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냐는 질문에 국책은행 고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코로나 대책에서 일부 지원된 부분도 있다”라며 “회사채 보증은 기존 채권에 대한 연장이니까 코로나 대책과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기간산업의 주요 축을 담당한다. 이로 인해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으로 분류되고, 그간 기반이 무너진 것을 정부가 보전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냉정한 구분법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어려움은 코로나와 별개로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당장 유동성의 공급만 책임지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에 대해선 기존 채권의 연장과 더불어 추가 자금 공급이 이뤄졌다. 국책은행은 자구안을 제출한 두산중공업에 대한 추가 자금도 조만간 집행할 예정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 지원은 특히 최근 어려워진 회사들, 오래전부터 무너져있는 회사까지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두산중공업은 이 전에 어려워진 것도 있고 정책적인 것과 연관이 됐지만, 이거는 지금 코로나 상황에 대한 부분만 지원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명확하다고 보는 항공사도 어떤 논리를 가져다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시아나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었고, LCC와 경쟁에서도 밀린 상황에서 코로나로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정치적인 판단 크다” = 전문가들은 이번 기간안정기금의 조성이 필요했다면서도 모호한 규정이 불가피하게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지금은 좀비로라도 버텨야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되는 기회가 사라지는 부작용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망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지원은 한계기업까지 돕는 부작용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금 지원은) 금융기관이 자기 책임하에 판단해야 하는데 기간산업기금으로 구분된 것은 정치적인 판단의 여지가 커지는 게 사실이다”라며 “그나마 사태가 끝난 후에 지원 논란이 있었다면 과감히 칠 수 있는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정부의 독단적 구분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는 “국가가 지원 기업을 판단하는 게 가능한가 싶다. 잘못하면 없어져야 할 기업을 생존하게 하는 것이니까, 특혜가 될 수 있다. 요즘처럼 항공산업이 너무 어렵다는 것 말고는 정부가 개입해서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