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안정펀드(20조 원), P-CBO(6조7000억 원),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정부 지원에 ‘돌다리도 두드리던’ 기업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어차피 힘들어지면 정부가 지원해 줄 텐데…. ‘물들어 올 때 노 젓자’라는 분위기가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가 전한 기업 자금조달 시장의 분위기다. 앞뒤 안 가리고 빚내서 곳간을 채우려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4월 위기설’은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자금 투입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기업들에 긴급 수혈한 덕분이다. 실제 4월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수요예측 목표액에 매수 주문이 미달하는 사례는 신용등급 ‘AA-’인 한화솔루션 외에 없었다.
회사채 발행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저금리로 인한 회사채 호황은 그간 기업들의 신규 투자에 자금 조달을 뒷받침해왔다. 그러나 지나친 차입이 기업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은 되새겨봐야 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100%에 이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 기구는 “이는 주요 20개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중소기업 부채의 약 40%는 위험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했다.
정부는 기업 살리기에 정책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기업지원 확대는 무작정 돈을 퍼주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 예산 집행 시 비효율과 낭비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제로베이스에서 엄정 평가, 실효성 있는 곳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무임승차’ ‘공짜점심’은 바람직하지 않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무차입경영으로 IMF 위기를 어려움 없이 이겨낸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