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와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 최고 수준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1조3000억 원 이상을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급격한 가격 변동 시 개인투자자의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일부 원유 ETN에 대해 '위험' 등급 소비자경보를 발령한 다음 날인 지난 10일부터 지난 24일까지 개인 투자자는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ETN·ETF를 총 1조3649억 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은 특히 이 기간 10거래일 내내 해당 ETN과 ETF 양쪽 모두에서 연속 순매수 행진을 기록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9일 레버리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ETN 4개 종목의 지표가치(기초자산)와 시장가격 간 괴리율이 최대 95%까지 치솟자 이들 종목에 대해 소비자경보 최고 등급인 위험 경보를 발령했다.
금감원이 위험 경보를 발령한 것은 지난 2012년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최초였다.
이후 지난 22일에는 거래소가 이들 4개 ETN 종목에 대해 "투기성이 높은 레버리지 상품의 특성상 원금 전액 손실 및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다"고 이례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이어 23일에는 금감원이 위험 소비자경보 범위를 레버리지뿐만이 아닌 모든 WTI 선물 ETN 및 ETF 상품으로 넓혔다.
금감원과 거래소는 최근 WTI 선물 가격이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국제 유가의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커지면서 괴리율이 크게 확대돼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 급락으로 지표가치는 크게 떨어졌는데도 투자자 매수세가 계속된 결과 지표가치 대비 시장가격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다.
이중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경우 거래소에 따르면 24일 장 마감 기준 시장가격은 2085원인데 지표가치는 193.57원에 그쳐 괴리율이 무려 977.13%에 이른다.
시장가격이 실제 가치의 무려 10.8배 수준으로 뻥튀기된 셈이다.
이에 거래소는 최근 한층 강화된 ETN·ETF 괴리율 관련 상시 대응기준을 마련하고 괴리율 확대로 거래 정지된 레버리지 WTI 선물 ETN 4개 종목의 거래를 이날 단일가매매 방식으로 재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종목의 괴리율이 너무 커져 시장 가격조절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여서 가격 정상화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통상 시장가격이 지표가치보다 지나치게 오르면 유동성공급자(LP)인 해당 종목 발행사가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놓아 시장가격을 지표가치에 가깝게 조절하지만, 현재처럼 시장가격과 지표가치가 크게 벌어지면 LP가 가격조절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LP는 지표가치의 ±6% 범위를 초과하는 ETN 호가를 낼 수 없어서다. 이에 투자자가 자율적으로 시장가격을 떨어뜨려 지표가치와 접근시켜야만 LP의 가격조절 기능이 되살아나 시장가격이 정상화될 수 있다.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경우 지표가치가 현재(193.57원)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시장가격이 이날부터 2거래일 연속 하한가(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60%)까지 떨어진 뒤 3번째 거래일에도 약 42% 하락해야 지표가치와 동일한 수준이 된다.
하지만 거래소의 괴리율 대응기준에 따르면 단일가 매매 상태에서 괴리율이 30% 이상을 기록한 종목은 3거래일간 거래 정지를 거쳐 단일가 매매로 거래가 재개된다.
이에 따라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경우 이날 시장가격이 하한가(834원)까지 떨어지더라도 지표가치가 현재의 약 3배인 583.8원 이상으로 폭등하지 않는 한 괴리율이 30%를 넘어 3거래일간 거래가 정지된다.
결국, 이들 종목은 앞으로도 하한가 수준 급락과 거래 정지를 여러 차례 거쳐야만 가격 정상화가 가능한 상황이어서 개인투자자에 대한 우려는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