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금융감독원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관련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와 관련해 김앤장 법률사무소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이다. 그동안 은행권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배상안 거부 의사를 밝히며 ‘배임’ 문제를 주된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김앤장에 의뢰해 받은 법률 검토보고서에서 배상 행위에 배임 소지가 없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더 이상 배상안 수락 여부를 연기할 명분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하나·우리은행 등은 지난해 말 금감원 분조위가 키코 피해 기업들의 손실액 일부를 배상하라고 권고하자, 김앤장을 비롯한 몇몇 법률사무소에 배상과 관련한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 이에 김앤장은 피해 기업에 배상해주는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시중은행에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경영판단의 원칙’ 내용이 주로 담겼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회사 경영진이 선의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그 권한 안의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은행이 키코 피해 기업에 배상을 해주더라도 경영진이 관리자의 의무를 다 했다면 그 행위만으로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해당 보고서를 받고 배상을 완료한 곳은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우리은행은 보고서를 검토한 뒤 배임 소지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2월 일성하이스코와 재영솔루텍 등 2개 피해 기업에 총 42억 원을 배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도 당연히 법률사무소에 배임 소지가 있는지를 포함해 여러 법적 문제를 검토해 달라고 의뢰했고, 배상이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받았기 때문에 배상 권고안을 내놨다. 시중은행이 법률 검토를 맡긴 법률사무소도 같은 사안을 같은 법으로 검토했으므로 금감원과 똑같이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 등 키코를 판매한 6개 은행에 “피해 기업 4곳에 손실액의 최대 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분조위 권고 이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지난달 배상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은행은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사건이고, 대법원 판결이 난 사건에 또다시 배상을 하는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하나은행은 6일 분조위 배상안 수용 여부에 대한 입장 회신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분조위 결과가 나온 지난해 12월 이후 4번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키코와 관련해 여러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 검토를 받고 있는 것은 맞고, 신한은행도 김앤장을 포함해 여러 로펌에서 자문을 받는 상황”이라며 “법무법인에서 받은 모든 검토 결과를 합산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배임 문제는 은행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사안인데 특정 로펌에서 배임이 아니라고 했다고 해서 당장 배상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국도 배임이 아니라고 한 상황에서 단순히 로펌의 보고서 하나만 보고 판단할 것은 아니고, 여러 사안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