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실 상호금융기관들이 그간 관계형 금융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등 관계형 금융의 절대적 규모는 증가했지만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이 확대되면서 총대출의 양적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관계형 금융의 상대적 비중은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민을 위한 관계형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정부는 결국 담보 기반의 서민대출을 지원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즉, 저축은행을 포함한 상호금융기관들과 정부가 보증기관에 출연금을 납입하고 보증기관이 동 재원을 토대로 보증서를 발급하는 방식의 햇살론이라는 서민정책금융이 바로 그것이다. 햇살론은 애초 5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서민정책금융을 취급하는 상호금융기관들이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고객정보 확보에 주력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제고한다면 5년 후에는 신용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햇살론은 2020년까지 연장됐고 2020년 이후에도 재차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상호금융기관들의 관계형 금융체계 구축 및 관계형 금융 기능 수행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이며 해당 정책과 기능의 안착까지는 정부와 상호금융기관의 상당 기간에 걸친 노력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신용협동조합의 영업구역을 시·군·구에서 시·도로 확대하는 신용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있어서는 몇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첫째, 본 법률안은 지역 기반의 관계형 금융 육성정책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의 지역적 영업범위가 넓어지면 지역 기반의 관계형 금융은 현실적으로 수행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금융협동조합의 관계형 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본 법률안은 규제완화가 긍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면 경쟁력을 갖춘 대형 시·도 금융조합의 탄생을 유도할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관계형 금융을 해 온 소형 협동조합의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게 되고 전체 금융기관 간 경쟁격화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불안전성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의 실증적 예로 2011년 대규모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들 수 있다. 당시 구역 내 영업 제한조치의 완화로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M&A)이 활성화돼 전국을 영업권으로 하는 대형저축은행이 등장했는데, 이후 해당 대형저축은행에서 부실이 발생하자 산하 자회사였던 지역단위의 저축은행으로 해당 부실이 전이돼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를 야기하였던 사례가 있다. 저축은행 업계와 금융감독 당국은 아직도 그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 개정안을 기화로 금융기관 간의 규제 형평성 문제가 촉발돼 타 금융기관들도 연쇄적으로 영업구역 확대 등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특히 영리법인인 저축은행의 경우 신협이 세금혜택 등의 각종 특혜를 통해 불공정한 경쟁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상쇄하는 조치로서 영업구역 확대를 정부에 요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관련 금융기관들 모두가 영업 확대를 도모한다면 금융기관 간 경쟁이 과열될 우려가 크다.
이렇듯 서민금융 확대를 위해 주도한 신협법 개정은 오히려 서민 대상 관계형 금융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상호금융기관 간 과당경쟁에 따른 금융시스템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기존의 관계형 금융 육성정책과 상충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신중을 기해 추진돼야 한다. 서민형 금융기관으로서의 신협의 정체성을 고려한다면, 영업구역의 확대보다는 관계형 금융을 공고히 하는 신규 부수 업무 부여 등의 발전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