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 "불편을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확진자가 폭증하고 지역 감염의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수입도 여의치 않은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분명히 있지만 오랫동안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식약처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들이 긴밀히 협력해서 빠른 시일 내 해결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 대목은 2월 25일과 26일의 발언과는 딴판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대구 방문 당시 "마스크 500만 장을 지원해달라"는 권영진 대구시장의 요청을 받고 "마스크 문제는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스크는 충분하니)학생들에게는 하나씩 배포되게끔, 별도로 마스크를 구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챙겨주시기 바란다"고 권 시장에 당부까지 했다.
26일에도 홍남기 부총리로부터 정례보고를 받고 “물량 확보 문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며 “마스크 수출 제한 조치로 공급 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약국 등에 가면 언제든지 마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문 대통령은 26일 "모래사장에 물빠져 나가듯"이라는 표현을 쓰며 가수요와 매점매석을 단속하라고 지시했었다. '체감'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마스크가 마트에 있는지 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날이다.
생산도 충분하고 정부의 대처에는 문제가 없는데 유통과정과 소비자들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는 인식으로 읽히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3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처음 언급함으로써 '수요탓'이 아니라 물량 자체가 모자라기 때문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렇듯 문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인식을 하게 된 것은 그간 대통령에게 전달된 마스크 관련 정보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3일 문 대통령이 정부의 모든 조직을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24시간 긴급 상황실 체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한 점, 그리고 코로나와 직접 관계가 없는 부처 장관들까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방역과 민생 경제의 중심에 서라"고 주문한 것은 일종의 '경고'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미 마스크와 관련해 두 차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뒤 참모진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달 27일 문 대통령은 참모진과 코로나19 대응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마스크 수급에 대한 상황을 국민에게 잘못 알린 것 등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준비도 하지도 않고 국민들에게 구입이 가능하다고 알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통령의 호된 질책이 있은 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인 지난 달 28일 국회에서 여야 4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조차 “(마스크 관련)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니 오늘부터 내일 모레까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대통령의 사과'가 갖는 무게에 맞는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는 곧 '정부 시스템의 포괄적 실패'를 인정하는 의미인 만큼 문책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오늘부로 24시간 체제로 전환하고 모든 장관에게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대신 현장에 나가라고 지시한 대통령의 발언은 군대로 치면 '집합'의 의미"라면서 "대통령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보고서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