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을 팔아달라니 물건을 내놓긴 하지만 저는 권하고 싶지 않네요. 워낙 외지인 투자가 많아서요.”
경기 평택시 용이동 Y공인 관계자는 ‘평택 뉴비전 엘크루’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1396가구가 입주하는 대단지 아파트인 평택 뉴비전 엘크루는 지난해 3월 분양에서 참패했다. 70건밖에 청약을 받지 못해 1326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변화가 생겼다. 다달이 100여 가구씩 제 주인을 찾더니 이달 초 모든 가구를 분양하는 데 성공했다. 평택 부동산 시장에선 ‘완판 분양’은 외지인의 투자 덕분이라고 본다. Y공인 관계자는 “부산에서도 버스를 대절해 계약을 하고 갔다”고 전했다. 현재 평택 뉴비전 엘크루 전용면적 84㎡형 분양권 가격은 4억 원을 넘어섰다. 애초 분양가보다 6000만 원 넘게 웃돈이 붙은 것이다.
일대 부동산에선 벌써 시세 차익을 챙기려는 물건이 많다. 올해 들어서만 이 아파트에서 분양권 전매 계약 299건이 체결됐다. 단타성 분양이 적잖다는 방증이다. 대전과 세종, 경기 광명시, 충북 음성군 공인중개사에서까지 평택 뉴비전 엘크루 분양권 매물이 올라와 있다.
미분양 아파트로 골머리를 앓던 경기 남부지역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고강도 규제를 피하려는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이 지역으로 눈을 돌려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평택과 화성, 안성시 등 경기 남부권 일대는 미분양 공포에 시달렸다. 지난해 6월 기준 세 지역의 미분양 아파트는 4474가구에 달했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 38.5%가 이들 지역에 몰려있었다. 최근 몇 년간 새 아파트 분양이 이어지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못 구해 발을 구르는 ‘역전세난’ 우려까지 커졌다.
이 같은 우려는 기우였다. 지난해 연말 평택과 화성, 안성의 미분양 아파트는 2394가구로 줄었다.
지역 부동산 시장에선 시세 차익을 노린 외지 투자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난해 하반기 평택ㆍ화성ㆍ안성시에서 신고된 아파트 분양권 검인ㆍ전매, 증여 거래(2만2532건) 가운데 68%(1만4538건)가 타 지역 주민이 소유ㆍ분양권을 취득한 경우다. 화성시 남양읍 D공인 관계자는 “분양권 가격이 주변 대도시보다 저렴하다보니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돈이 될 것으로 믿는 고객이 많다”며 “서울이나 수원, 안산 등 주변 지역에서 미분양 아파트에 많이 투자한다”고 했다.
경기 남부에 외지 투자자가 늘어난 것은 서울 부동산 규제의 ‘풍선효과’(부동산 규제로 비규제지역 집값이 오르는 현상)가 확산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평택과 화성, 안성 가운데 부동산 규제 지역은 화성 동탄2신도시밖에 없다. 나머지 지역에선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분양권을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출 규제도 느슨해 금융 부담도 적다.
특히 최근 풍선효과로 인근 수원 집값이 급등하면서 집값이 더 저렴한 이들 지역도 ‘가격 따라잡기’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늘고 있다. 실제 지난해 6월과 지난달 아파트값을 비교해보면, 세 지역 가운데 안성(-1.9%)은 아직 집값 부진에서 못 벗어났지만 화성(6.0%)과 평택(2.0%)의 부동산 시장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역 개발 호재도 외지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화성의 경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개통ㆍ경부고속도로 지하화, 평택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조성과 미군 기지 이전 등이 호재로 꼽힌다. 안성에서도 산업단지 확대, 수도권 내륙선 건설 등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충분한 실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지인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정 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가격을 무리하게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집값 버블이 생기기 쉽다”며 “매매 타이밍을 놓친 사람은 대출도 제대로 못 갚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정부에서도 규제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일 수원 전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으면서 오산이나 평택도 함께 지정하는 방안을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