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현대미술의 아버지"…삐뚤빼뚤한 글씨에 담긴 '아름다움'

입력 2020-02-13 06:00 수정 2020-02-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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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미술을 제시하다…내달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추사 김정희가 쓴 '칠불게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쓴 '칠불게첩'.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

다소 어려운 표현인 듯하지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을 표현할 때 이보다 적절한 문구는 없다.

‘추사체(秋史體)’로 규정된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깬 추사의 서체는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 비난과 조롱이 가득했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고 응수한다. 또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기교가 좋고 나쁨(공졸, 工拙)을 또 따지지 말라”고 말한다.

실제로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이게 예쁜 서체일까’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어린아이처럼 투박한 글씨를 두고 “정말 추사의 서(書)가 맞냐”고 위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글씨를 완전히 갖고 노는 듯한 그의 자유분방함은 현대미술가들의 롤모델이자 교과서가 됐다.

예술의전당은 다음 달 15일까지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등 30여 곳이 참여한 전시를 연다.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추(醜)’가 곧 ‘미(美)’= 최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 개막식에서 “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는 ‘예쁜’ 서체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는 “우리는 똑바로 쓴 것만 잘 쓴 것이라고 한다”고 운을 뗐다.

“퇴계 이황 선생은 걷기도 똑바로, 말도 똑바로, 글씨도 똑바로, 생각도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미학이 추사 때, 즉 19세기에 오면 바뀐다. 서구에서도 그리스 로마의 고전미학만 ‘미’라고 했는데, ‘추’가 곧 ‘미’라고 하지 않나. 그게 고전과 현대의 근본적인 차이다. 19세기는 동과 서가 대전하는 시기다. 우리는 서구 잣대로만 보니까 동아시아의 서화는 미술도 예술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100년 동안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추사체가 통통한 모양에서 직선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서한예서를 교과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큐레이터는 “왕희지가 근본이 아니라 서한예서가 근본”이라며 “중국 사람들은 이를 알았어도 혼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추사의 '임군거효렴경명'.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의 '임군거효렴경명'.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체는 특정한 형태에 갇히지 않았다. 때로는 단단하게, 때로는 춤을 추듯 가볍다. 그의 초년과 말년 글씨도 완전히 다르다.

이번 전시는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옛 베이징 여행)과 학예일치(학문과 예술이 하나 됨)’, ‘해동통유(유불선을 아우르는 말)와 선다일미(참선과 차를 마시는 것은 같음)’, ‘유희삼매(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3부로 나눠 보여준다.

기괴고졸한 조형미학 특징인 추사체를 현대적 미로 연결해 바라보려는 취지에서 열리는 까닭에 중국 전시전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 현대작품 10점도 함께 전시된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 서예가 손재형(1903~1981) 등 추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추사의 미학을 이어받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큐레이터는 “추사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추사를 서예 장르에 가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의 글은 학문이고 예술”이라며 “‘계산무진’과 ‘무쌍·채필’에서 보듯 글씨를 갖고 노는 듯한 유희의 경지는 추상표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통과 현대가 단절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현대 미술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다름 아닌 추사의 미학을 이어오고 있다는 지점에서 추사의 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사의 '유희삼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의 '유희삼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중국에선 30만 명, 한국은 걱정 가득 = 중국 전시는 하루평균 5000명, 총 30만 명이 방문하는 등 중국 내 추사 열풍을 일으켰다. 우웨이산 중국국가미술관장이 “글씨를 넘어서서 그림이다. 허실(虛實)의 미학을 극대화하면서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적이고 추상적”이라고 평가하는 등 중국 전문가들도 극찬했다.

이 큐레이터는 “중국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최고로 평가받던 추사 학예(學藝)의 세계성을 확인했다”며 “150년, 200년 전에 현대미술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추사의 현대성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서예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개막식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장품도 지원 예산도 없는 서예박물관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고민이 많다”며 “적어도 추사 작품만큼은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직접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명화 전시회는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추사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씁쓸하고 자괴감도 든다”며 “예술의전당도 노력하겠지만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도 서예박물관에 지속적인 관심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예술의전당에 이어 제주, 충남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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