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높다고요? 구직자 말 들어보니 “중소기업, 이래서 안 간다”

입력 2020-02-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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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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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청년들을 두고 '눈이 높다'고 말합니다. 중소기업은 직원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청년들이 대기업만 바라보느라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죠.

일부 중소기업의 인식도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는 "초봉이 3000만 원대고, 점심과 저녁도 주는데 퇴사하는 사람이 많고, 지원 자체도 적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는 다릅니다. 2년간 서울의 한 건축설비설계 회사에 다니다 퇴사한 김모(30) 씨는 지금도 말버릇처럼 '첫날 분위기 보고 그만뒀어야 했다'라고 읊조립니다.

"회식한다길래 짐을 챙기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방을 놓고 가더라고요. '왜 가방을 안 가지고 가느냐'고 묻자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회식 이후에 또 와서 일해야 하는데 가방을 왜 챙기냐고 하더군요."

◇여전히 높은 청년 실업률…구직자 "중소기업은 싫다"

국내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입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청년 실업률은 7.3%, 청년 실업자는 31만 명에 달합니다. 확장 실업률은 22.9%. 대학과 기업 간의 고용 불일치 등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중소기업은 가지 않겠다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이라고 공고를 내놓고 실제로는 잔업과 특근을 시키고, 주 6일 근무하는 곳도 태반이죠. 수당은 당연히(?) 없습니다. 사업자는 '집에 갈 생각만 하면 언제 배워서 성장하겠냐'며 퇴근을 시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업무 환경도 문제입니다. 초봉이 3000만 원이지만 여기에는 퇴직금이 포함돼 있습니다. 퇴직금을 별도로 지급해야 하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한 탓에 실제 연봉은 '13분의 3000'을 해야 합니다. 연차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도 많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대기업보다 더 지키기 어려운 곳이 중소기업이라는 것이지요.

서울의 한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했던 윤모(30) 씨는 "일이 많을 때는 새벽 4시에 퇴근했다가 아침 9시에 다시 출근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직원들한테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았죠. 오히려 임원들 차가 바뀌는 걸 보고 퇴사를 결심했어요."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경쟁률 100대 1…'좋은' 중소기업은 인재 몰린다

물론, 중소기업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할 만큼 관심을 끈 곳도 있죠. 최근 제어반ㆍ와이어 하네스 생산 중소기업인 E사 채용에는 1536명의 인재가 몰렸습니다. 이 중 15명을 추려 면접 대상자로 선정했죠.

이 회사의 복지가 좋은 것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채용공고를 올린 까닭에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퇴직금을 별도로 지급하고, 남성이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올렸습니다. 야근 시 수당 지급은 물론 회식 강요가 없는 것,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고했습니다.

디자인 회사나 IT 회사들을 중심으로 이색적인 채용공고가 많이 올라옵니다. 중소기업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인재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비책인 셈이죠.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이 주목받은 것은 다름 아닌 조직 분위기입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 대신 남 같은 분위기라고 호소합니다. 희생을 회사에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젊은 구직자의 기호를 공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직된 조직문화를 갖춘 중소기업에서는 졸면 '일이 없냐'고 핀잔받겠지만, 인재가 몰리는 곳은 '졸지 말고 엎드려 자라'고 말합니다. 할 것만 잘한다면 잠시 일과 멀어지더라도 용인해주는 것이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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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은? 워라밸 좋고, 조직문화 유연한 곳

최근 구직자들은 연봉이 낮더라도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곳을 선호합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입사 희망기업 연봉과 야근 조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6.5%가 '연봉 중간, 야근 적은 기업'을 선택했습니다.

폭언이나 갑질없는 회사도 선호하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고, 사업자의 입김이 강해 폭언이나 성추행, 갑질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직장 선택 시 고려 요소 및 요소별 중요도’ 연구에 따르면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집에서 가깝고 야근 없이 주 40시간만 일하는 갑질 없는 회사’가 꼽힌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취업준비생인 최현호(25) 씨는 "청년들의 인식이 변한 것처럼 중소기업 역시 조직 문화를 바꾸고 기본적인 법규를 잘 지켜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최 씨는 "퇴사율이 높다거나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원인을 스스로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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