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회계법인인 EY한영의 서진석 대표가 9일 돌연 사임했다.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둔 시점에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선 '원펌 체제'인 글로벌 EY가 EY한영에 내부 불만 등 법인 사정을 고려한 조치라며 사실상 ‘경질’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한영 측은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EY한영은 전날 서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서 대표는 2015년 4월 취임한 뒤, 작년 4월 연임에 성공하면서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9일) 밤 11시께 임직원에 이메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퇴진을 공식화했다.
서 대표는 사임문에서 “법인의 목표인 비전 2020을 달성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며 “이제 법인에서 대표로서의 제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020년 이후 발전의 토대를 새로운 리더십에게 넘기고, 이제 또 다른 세계로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번 주부터 내부에선 서 대표의 퇴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며 “회계법인 대표이사가 임기를 남기고 돌연 사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일단 서 대표는 재임기간 한영의 외형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 별도) 1863억 원이던 매출은 2018 사업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 별도)에 336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경영 방침에서 내부 갈등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트너급은 실적 압박을 받고, 저연차 회계사의 인차지 부담 등 고강도 업무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엔 시니어 인력의 줄퇴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투입 인력 시간 통제 등 무리한 업무 강도로 내부 반발이 거셌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른바 ‘타임통제’를 했다는 내용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과 근무를 인정하지 않는 등 ‘타임 통제’를 해 내부 불만이 많았다”며 “52시간을 초과해도 추가 근로 시간을 시스템에 입력할 수 없게 설계가 됐고, 감사투입시간 작성에 눈치를 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회계법인 빅4 중 타 법인은 초과근무시 회계사는 일별로 시간표를 작성해 결재를 받아 근로시간을 인정받는다. 초과 근로시간에 대해선 휴가 등 형태로 보상받는 방식이다. 이에 EY한영은 인건비를 아끼려는 목적으로 ‘타임통제’를 했다는 지적이다.
타임통제 폐해가 결국 작년 주기적 감사인 수임의 후폭풍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있다. 타임통제를 하다보니 집계되는 절대적인 감사가능시간도 감소해 대기업 클라이언트 유치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한영은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감사인 수임에 크게 기대했지만 실패하면서 내부 분위기도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EY에 내부 제보가 들어가면서 후속 조치로 경질한 것으로 안다”며 “내부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본사도 가만히만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임통제 등 내부불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주기적 지정제 결과 등 경영 과정에서 책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 대표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사실상 경질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된 배경이다.
이 같은 해석이 나오는 배경엔 EY한영이 국내 유일한 '원펌'이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빅4 회계법인 중 삼일ㆍ삼정ㆍ안진ㆍ한영은 글로벌 펌과 파트너십 체결해서 관계를 유지한다. 이중 한영은 글로벌 EY에서 한국 지사와 같은 형태로 타법인에 비해 본사의 영향력이 행사될 수 있는 경영 구조이기 때문이다.
EY한영 관계자는 “서 대표의 사임은 개인적 사유로 발표만 앞당겨졌을 뿐”이라며 “문제가 있었다면 고문직을 유지할 이유도 없을 것”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서 대표는 고문직으로 향후 거취를 정하면서 EY한영은 오는 12일 파트너총회와 사원총회를 거쳐 임시대표를 선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