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눈치보는 와중에 한·미 워킹그룹 회의가 10일 오전 외교부에서 개최됐다. 대북 문제 관련 한·미 외교 실무자들이 마주 앉은 건 지난달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워싱턴 방문 이후 약 한달 만이다
한·미 워킹그룹 회의는 2018년 11월부터 시작됐지만, 사실상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워킹그룹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은 앞서 “한국은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한·미 워킹그룹이 한·미 간 종속관계를 보여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이 회의에 반발하는 북한을 고려해 ‘한·미 워킹그룹’이란 ‘간판’을 떼고 회의를 ‘비공개’로 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5월 회의 이후 배포하는 보도자료에서 워킹그룹이란 표현을 아예 쓰지 않고 있다.
웡 부대표는 이날 오전 10시쯤 외교부에 도착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관련한 대북 지원에 관해 논의할 것인지’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다시 서울에 오게 돼 기쁘다”며 즉답을 피하는 듯 취지와 다른 대답을 했다. 한국 측에선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이 대표로 나섰고 미국 측은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가 대표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리 정부가 연초부터 제기한 북한 개별관광을 비롯해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등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은 개별관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데다 오히려 교착상태에 놓인 북미대화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점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DMZ 평화지대화의 경우도 비영리적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유엔 제재의 예외라는 점과 북한의 대화 복귀를 추동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미국을 설득해왔다. 미국 측은 이에 대해 남북협력 사업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두고 여권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워킹그룹을 대북제재 면제와 관련해 불허하는 일종의 ‘게이트 키퍼’라는 비판적 인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수혁 주미대사는 지난달 특파원 간담회에서 “워킹그룹과 관련한 부정적 인식은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같은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외교부는 회의 개최 당일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물론 개최 여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기존에도 차석대표 협의의 경우 언론에 보도자료 배포 등을 하지 않은 적은 있지만, 회의가 열리기 직전까지 관련 일정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미 국장급 협의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가운데 통일부는 남북 간 민간교류 협력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교류협력실’ 신설 등을 골자로 한 대규모 조직개편이 10일 완료됐다. 정부가 구상 중인 대북 개별관광 등 각종 교류협력사업이 사실상 가시권에 들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직제개편으로 기존 교류협력국이 교류협력실로 확대 개편돼 통일부는 기존 ‘2실(통일정책실·기획조정실)’에서 ‘3실’ 체제로 전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