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마일리지는 베일에 싸여 있어요.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소비자가 두드리고 있는 겁니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정길호 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는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항공사가 마일리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프로그램(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지역별'로 적용했던 마일리지 사용과 적립을 '운항 거리'로 바꾼 것. 원래 북미ㆍ유럽ㆍ동남아 등으로 적용했던 기준을 뉴욕ㆍLA로 바꿔 차등화했다. 같은 나라라도 거리에 따라 마일리지가 다르게 차감된다.
마일리지 사용과 적용 기준이 달라지면 공제율이 대폭 인상된다. 소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49개 노선과 좌석 승급의 마일리지 공제율이 대폭 올라간다. 가령, 뉴욕행 일반석은 그간 3만5000마일리지가 공제됐지만, 이번 개편으로 4만5000으로 늘게 된다. 프레스티지석은 6만2500에서 9만으로 대폭 증가한다. 일반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좌석 승급을 하면 8만 마일리지에서 12만5000으로 올라간다.
소비자와함께는 이를 '소비자 권익의 침해'라고 규정했다. 소비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약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대한항공 재무제표 기준으로 2조3000억 마일리지 자산 가치의 3분의 1이 훼손돼 소비자들은 수 천억 원의 손해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성구 마일리지 권익지키기추진단 대표는 이번 마일리지 개편안을 보고 "동네 카페도 이렇게 장사 안 한다"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 10잔 먹으면 '한잔 무료'로 준다는 쿠폰을 발급하다가 소비자가 많아지니 15잔을 먹어야 한잔 무료로 준다고 바꾸는 일"이라며 "동네 카페도 이렇게 장사하면 문을 닫는데, 대기업인 대한항공이 이러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한 것은 물론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한 것은 무효가 되도록 기다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매년 3000억~5000억 원 가치의 표를 보너스로 내놓고, 보너스 항공권의 규모도 공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와함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간 공정위는 '약관 위반'으로 대한항공에 대응하고 있지만, 효과가 충분치 않다는 것. 게다가 현 정부가 '갑을관계 해소'에 집중하다 보니 마일리지 제도 개편과 같은 소비자와 밀접한 사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대한항공은 이번 마일리지 제도 개편이 소비자에게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제도 개편 이후 영국항공, 싱가포르항공 등 외국 항공사보다 마일리지 적립률이 높아졌다는 것.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보너스 항공권을 사면 마일리지 차감률이 높아지는 노선보다 낮아지는 노선이 더 많다"면서 "일반석 예약등급의 적립률은 깎이지만,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의 적립률은 오른다"라고 밝혔다.
더욱이 항공권을 살 때, 마일리지와 현금ㆍ카드의 복합결제를 허용하면서 마일리지를 최대 20%까지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단, 항공권 할인 사이트에서는 이 혜택을 누릴 수 없고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소비자와함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개인이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단체가 나서 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명희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는 "피해자 손해배상에 대한 소송을 추진할 방침"이라며"적게는 5000억~6000억 원, 많게는 1조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약관법에서는 일방적인 불이익 변경은 '불공정한 변경'으로 본다. 그래서 무효라고 보고 있다"라며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 개별로 따지면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전체로 합치면 큰 액수"라며 "국정감사 이슈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 사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