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처음으로 오스카 본상 부문에 진출해 작품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까지 4관왕에 올랐다.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생긴 이래 92년 만에 처음이다.
봉 감독은 9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917', '포드 V 페라리', '조조 래빗', '작은 아씨들', '아이리시맨', '조커', '결혼 이야기',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 미국 영화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았다.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리안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로 두 차례 수상했다.
이날 작품상이 호명되면서 봉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기쁨을 누렸다.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작품상 호명 직후 "예상도 못했던 일이다"며 "정말 행복하다"고 감격했다. 이어 "정말 시의적절하고 상징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고"며 울컥했다.
곽 대표의 짧은 수상 이후 무대 위 불이 꺼졌고, 톰 행크스를 비롯해 객석에 앉은 이들이 불을 켜달라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함께 무대에 오른 이미경 CJ 부회장은 "봉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그의 유머 감각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생충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특히 한국 관객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봉 감독은 감독상 호명 당시에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봉 감독은 "어릴 때 '가장 개인적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는데,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을 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 경쟁 작품의 감독을 비롯한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것도 아카데미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로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받은 후 17년 만이다.
봉 감독은 "국가를 대표해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고독하고 이로운 작업"이라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다. 언제나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제 대사를 멋지게 화면으로 옮겨준 멋진 배우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 다음은 아카데미 시상식 2020 수상자(작) 목록
▲작품상: 봉준호('기생충')
▲남우주연상: 호아킨 피닉스('조커')
▲여우주연상: 르네 젤위거('주디')
▲남우조연상: 브래드 피트('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여우조연상: 로라 던('결혼 이야기')
▲감독상: 봉준호('기생충')
▲각본상: 봉준호, 한진원('기생충')
▲각색상: 타이카 와이티티('조조 래빗')
▲촬영상: 로저 디킨스('1917')
▲편집상: 마이클 맥커스커('포드 V 페라리')
▲국제장편영화상: 봉준호('기생충')
▲미술상: 바바라 링('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의상상: 재클린 듀런('작은 아씨들')
▲분장상: 비비안 베이커('밤쉘')
▲음악상: 힐더 구드나도티르('조커')
▲주제가상: 엘튼 존-'(I'm Gonna) Love Me Again'('로캣맨')
▲음향편집상: 도널드 실베스터('포드 V 페라리')
▲음향믹싱상: 스튜어트 윌슨('1917')
▲시각효과상: 기욤 로셰론('1917')
▲장편애니메이션상: 조시 쿨리('토이 스토리4')
▲단편애니메이션상: 매튜 A. 체리('헤어 러브')
▲단편영화상: 마샬 커리('더 네이버스 윈도우')
▲장편다큐멘터리상: 스티븐 보그너('아메리칸 팩토리')
▲단편다큐멘터리상: 캐롤 다이싱거('러닝 투 스테이트보드 인 어 워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