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이 ‘내력벽 철거’ 이슈에 가로막혀 표류하고 있다. 안전성 검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당국의 허가를 못 받고 있어서다. 신기술 실증단지를 자처해, 우회로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한국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지난달 말 ‘노후 공동주택 수직증축 리모델링 실증사업’에 참여할 단지를 공모했다. 이번 사업은 국토교통부 등 정부 지원으로 개발한 수직증축 리모델링 기술을 실제 단지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란 기존 아파트 꼭대기층 위로 최대 3개층을 더 올려 짓는 것을 말한다. 총 가구 수의 15% 범위 안에서 가구 수를 늘릴 수 있다.
이번 사업엔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잠원훼미리아파트, 경기 안양시 평촌 목련3단지 등 5개 단지가 지원했다. 국토기술진흥원은 이 가운데 3곳(설계진행단지 2곳ㆍ착공예정단지 1곳)을 실증단지로 선정할 예정이다. 실증단지로 선정되면 국토부의 재정 보조를 받아 2022년까지 2~3개 층을 수직증축할 수 있다.
국토부가 수직증축 실증사업 지원에 나선 것은 수직증축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 위로 층을 높여 쌓는 수직증축과 옆에 아파트를 덧붙여 짓는 수평증축으로 나뉜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사이에선 성사만 된다면 수직증축이 더 낫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여유 공간이 부족한 대다수 단지의 경우, 수직증축이 수평증축보다 더 많이 늘릴 수 있어서다. 늘어나는 가구를 일반분양하면 기존 입주민의 사업비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문제는 수직증축을 허용받을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수직증축을 허용받은 단지는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 한 곳뿐이다.
실증사업에 참여한 단지들도 대부분 당국 허가를 피해갈 우회로로 사업에 지원했다. 잠원훼미리아파트 조합 관계자는 “수직증축 허가가 사실상 안 나오지 않느냐”며 “정부 허가를 마냥 기다리느니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 실증단지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수직증축의 가장 큰 쟁점은 내력벽(건물의 하중을 받치거나 분산하는 벽) 철거 허용 여부다. 리모델링 업계에선 내력벽 철거가 허용되지 않으면, 공간 설계를 바꾸기 어려워 리모델링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내력벽 철거를 허용할지 결정하기 위해 2018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안전성 검증 용역을 맡겼다.
국토부는 지난해 3월 용역을 마무리짓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결론이 안 나고 있다. 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검증하다 보니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며 “4~5월에 결론을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하중을 버티는 콘크리트 말뚝의 안전성 검증도 말썽이다. 리모델링 허가를 받기 위해선 콘크리트 말뚝의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지만, 당국은 어디서 검증을 맡을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리모델링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에선 내력벽도 철거 안 하고, 지반이 단단해 콘크리트 말뚝이 설치되지 않은 성지아파트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평가한다.
국토부가 수직증축 리모델링사업을 평가할 기술적 기반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수직증축을 포기하려는 단지도 늘고 있다. 평촌 목련 3단지만 해도 수평증축으로의 선회를 검토하고 있다. 목련 3단지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수직증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실증사업을 신청했지만 정부가 계속 수직증축 사업에 미지근하게 굴면서 불안해하는 조합원이 많다”며 “올해 안에 총회를 열어 어떤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할지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활성화하려면 리모델링에 성공하는 선도단지들이 나와야 한다”며 “사소한 기술적 쟁점은 정부가 주도해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