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5단지 아파트 전용면적 64㎡형을 보유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말 세입자 B씨를 새로 맞으면서 임대 형태를 전세에서 반전세(240개월분 월세 이상을 보증금으로 받는 월세 계약)로 바꿨다. 전셋값이 2년 새 5억 원에서 5억5000만 원까지 올랐지만 보증금 2억 원대, 월세 60만 원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A씨는 “시세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전세를 살겠다는 수요자가 줄을 섰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A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세제 정책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주택 임대시장에서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전세 구하기에 지친 세입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신고된 아파트 임대 계약(8209건) 가운데 월세 계약 비중은 29.2%(2398건)이다. 한 달 전(27.4%)보다 1.8%포인트(P) 올랐다. 월세 계약이 바닥을 쳤던 9월(24.9%)과 비교하면 4%P 넘게 차이 난다.
임대 수요가 많은 강남4구(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구)와 양천구 목동에선 월세 비중이 더 높았다. 지난달 이들 지역에서 신고된 아파트 임대 계약(3280건) 중 33.8%(1106건)가 월세 계약이었다. 전월에 강남4구와 목동에서 신고된 임대 계약 3258건 가운데 월세 비중은 30.0%(977건)였다.
특히 반전세 계약이 월세 증가세를 이끌었다. 지난달 서울시에서 신고된 반전세 계약은 1319건으로, 전체 임대 계약의 16.1%를 차지한다. 2019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다. 특히 강남4구와 목동에선 임대 계약의 4건 가운데 한 건꼴(24.0%)로 반전세 계약이었다.
업계에선 주택 임대시장을 뒤흔든 가장 큰 변수로 12ㆍ16 부동산 대책을 꼽는다. 정부가 12ㆍ16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 공시가격 현실화 등에 속도를 내기로 하면서 다주택자들의 주택 보유 부담이 크게 늘었다. 주택을 여러 채 가진 집주인으로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다.
저금리 기조도 월세의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전세보증금으로 목돈을 받아서 은행에 예치해봤자 큰 재미를 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의 전ㆍ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이자율)은 5.1%, 강남권은 6.2%다. 최근 시중은행의 이자율이 2%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월세로 계약하는 게 2.5~3배 이득이라는 뜻이다.
거꾸로 세입자로선 월세로 입주하는 게 전세로 입주하는 것보다 손해다. B씨가 입주한 A씨의 목동 5단지만 해도 그렇다. 이자율 2.0% 기준으로 B씨가 다달이 월세 60만 원을 예금 이자로 받으려면 2년 동안 3억6000만 원가량을 예치해야 한다. 여기에 보증금 2억 원을 더하면, 전세 시세인 5억5000만 원을 웃돈다. 전세 계약 때보다 B씨가 1000만 원 넘게 밑지는 셈이다.
그런데도 B씨가 월세로 입주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월세 선호현상으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시 확대, 외고ㆍ자사고ㆍ국제고 폐지 등 교육 정책 개편으로 명문고와 학원가가 몰려 있는 강남권과 목동 일대에서 전셋집이 더욱 귀해졌다. 여기에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청약 대기자까지 전셋집 구하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지역의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이 계속되는 만큼 올해도 전셋값은 오르고 반전세ㆍ월세시장도 커질 것 같다”며 “상황에 따라서 정부도 전세시장을 직접 겨냥할 대책을 꺼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