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M&A ‘승자의 저주’를 조심하라

입력 2020-01-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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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기자 (이투데이)
▲이주혜 기자 (이투데이)

옛 그리스 에피루스(Epirus)라는 나라에 피루스(Pyrrhus) 왕이 있었다. 약탈과 침범을 일삼는 로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참다못한 피루스는 2만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 승리했다. 희생은 컸다. 군대의 4분의 3을 잃었고 코끼리도 다 죽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그는 “이런 전투를 한 번 더 이겼다가는 우리가 망할 것이다”고 뒤늦은 장탄식을 했다. 후세 사람들은 ‘상처뿐인 승리’를 일컬어 ‘피루스의 승리’라고 말한다.

경제학과 M&A시장에서는 피루스의 승리를 흔히 ‘승자의 저주’라 한다.

최근 M&A시장에서는 새 주인의 품에 안긴 아시아나항공(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과 코웨이(넷마블)를 두고 옛 대우건설(승자의 저주)의 데자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그도 그럴 만 하다. 시장에는 아시아나항공의 과도한 재무적 부담과 경영 정상화 지연에 따른 지속적인 자금 투입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HDC그룹이 ‘승자의 저주’를 피해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코웨이도 마찬가지다. 게임과 렌털사업의 시너지가 커 보이지 않아서다. 넷마블은 게임산업에서 확보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 등을 렌털사업에 접목해 ‘스마트홈 구독경제’를 선점한다는 계획이지만, 게임과 렌털사업 주 고객층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재를 뿌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승자의 저주’의 경험상 돈이나 부풀려진 청사진이 장밋빛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HDC그룹이나 넷마블 모두 피인수 기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만큼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전략을 갖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돈으로 일으킨 기업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썩은 환부는 과감히 도려내야겠지만,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인 인재를 함부로 한다면 조직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종종 봐 왔다.

아픈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또다시 희생양이 된다. HDC그룹이나 넷마블 모두 지난 ‘승자의 저주’를 교훈삼아 피루스의 승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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