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경영개입 시동… 발등에 불 떨어진 재계

입력 2019-12-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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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 검찰 기소된 ‘효성’ㆍ장기 연임한 ‘현대차’ 등 중점관리대상 기업 가능성

(그래픽=이투데이)
(그래픽=이투데이)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강행하면서 경영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년 3월 열리는 주주총회부터 국민연금이 ‘기업 가치 훼손’이 있는 투자 기업에 대해 본격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에 따른 경영 전략 수정과 지배구조 변화의 부담을 안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27일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횡령ㆍ배임ㆍ사익편취 등으로 기업 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이사해임 및 정관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포함했다.

이런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예고에 경영계는 집단 반발에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늘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국 우리 경제의 활력도 잃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독립성이 취약한 현행 기금위 구조를 감안할 때 앞으로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단체도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해 민간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선ㆍ해임 등에 대해 경영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실제 주주 가치는 시장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며, 국민연금이 주도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한다고 해 의도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특정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경영개입 사실은 그 자체로 시장에 부정적 신호를 줄 가능성이 크며 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계의 반발에도 국민연금은 당장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주총에서 주주권을 본격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때 국민연금이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이 경영 개입의 ‘1차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3월 열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배당 부실을 이유로 △넷마블 △이오테크닉스 △대양전기공업 △씨에스홀딩스 등의 재무제표 승인을 거절했다.

이 밖에 △하나투어 △네이버 △에스비에스 △한국단자공업 △한국전력공사 △DB하이텍 △코오롱인더스트리 등의 경우는 임원 보수의 과다를 문제 삼아 주총 안건의 승인을 반대했다.

이들 기업 중 내년 3월 주총에서 다시 한번 국민연금이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는 곳이 나온다면 ‘중점관리사안 대상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검찰 기소를 당한 총수 일가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추진하는 때도 ‘법령위반 기업’으로 중점관리사안 기업에 포함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과거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던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내년 3월 주총에서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오너가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할 수 있는 국민연금이 어느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울러 형사처분을 받지 않은 총수라도 국민연금이 ‘지속적 의결권 반대에도 개선이 없는 기업’으로 분류해 경영 개입에 나설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등에 대해 장기 연임을 이유로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한 전례가 있다.

다만, 이사 해임 등 주주제안을 발동해 빠르게 경영에 개입하는 일을 당장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규모 산업재해 발생, 총수들의 사회적 물의 등에 따른 주가 폭락 등 ‘갑작스러운 기업 가치 훼손’이 발생할 때는 곧장 경영 개입이 가능하지만, 이보다는 국민연금이 지속적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기업들, 즉 중점관리사안 대상 기업에 대해 차례로 경영 개입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장기 수익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취지는 좋으나,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투명성,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에 개입한다면 본래 취지와는 달리 기업 경영을 압박하고 간섭하는 수단으로 변질할까 봐 우려가 된다”며 “‘기업의 길들이기’ 용으로 이번 가이드라인이 전락하지 않도록 적정한 주주권 행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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