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사업계획이 나와야 하는데….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12ㆍ16 대책까지 나와 머리를 더 싸매는 분위기입니다. 대부분의 건설사가 내년 사업을 보수적으로 짤 것 같습니다.”(대형건설사 관계자)
건설사들의 내년 주택사업 계획이 오리무중이다. 연말까지 불과 며칠이 채 남지 않았는데도 대형건설사들은 안으로는 정비사업 수주 절벽에, 밖으로는 해외 수주 절벽에 시달리면서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견건설사들도 공공택지 품귀로 주택사업 계획를 짜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민간분양 물량은 올해보다 약 6만 가구 줄어든 32만 가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사업이 계획대로 실행될 수 있겠냐는 하소연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10월 진행된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공동주택 용지 입찰에 144개 건설사가 몰렸다. 지난달 나온 경기도 이천 중리 부지에는 이보다 더 많은 170개 업체가 추첨 입찰에 뛰어들었다. 같은달 평택 고덕국제도시에서 나온 3개 부지 공급은 △A48블록 52대 1 △A49 51대 1 △A50 3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나오기만 하면 수십, 수백대 1의 경쟁은 기본이 될 만큼 용지를 확보하려는 건설사들 간 쟁탈전이 치열하다.
공공택지지구 품귀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사들은 정부의 재건축ㆍ재개발 정비사업 규제의 직격탄까지 맞고 있다. 정비사업 수주난에 허덕이는 대형건설사들이 부족해진 일감을 채우기 위해 소규모 혹은 지방의 정비사업에도 손을 뻗으면서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견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다. 중견건설사들이 내년 사업계획 수립이 막막하다며 하소연하는 이유다.
대형건설사들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안전진단 기준 강화, 인허가 심의 강화 등 정비사업 규제 카드를 잇따라 꺼내면서 정비사업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이는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수주 절벽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분양을 코앞에 둔 사업장조차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올해 건설사와 지자체가 분양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분양이 수개월씩 지연되는 사업장이 속출했다. 이 같은 샅바싸움은 위례신도시와 과천 지식정보타운, 정비사업장 등 곳곳에서 발생했다. 지난주 분양시장에 나온 위례신도시 ‘호반써밋 송파’ 아파트의 경우 극적으로 올해 분양이 결정됐지만 당초 분양 일정을 감안하면 반년 이상 뒤로 밀렸다.
실제로 주택 인허가와 착공 실적은 올 들어 크게 줄었다. 올해 10월 말 기준 주택 착공 실적은 5만1021가구다. 2015년 이래 4년 연속 감소했다. 2015년 9만6763가구였던 착공 실적은 2016년 8만1413가구로 떨어진 뒤 △2017년 8만6890가구 △2018년 7만6963가구 △2019년 10월 기준 5만1021가구로 급감했다. 주택 인허가 역시 2015년 10만1235가구에서 7만4739가구(2016년)로 떨어졌고, 이후 △2017년 11만3131가구 △2018년 6만5751가구 △2019년 10월 기준 5만1386가구로 줄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가 책정 문제로 지자체와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분양 일정이 수개월씩 밀리지 않나”라며 "공급 시그널 없이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져 내년 계획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각종 규제를 총망라한 12ㆍ16 부동산 대책이 올해 막바지에 나온 것도 건설사들의 사업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는 볼멘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민간분양 예정 물량은 32만5879가구다. 작년 같은 시기에 조사했던 올해 분양계획 물량(38만6741가구) 대비 6만여 가구(15.7%) 감소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올해처럼 분양 지연이 다반사가 되면 이마저도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을 내놓는다. 올해 당초 계획 물량의 약 70%만이 시장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내년 분양 물량도 30만 가구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규제 여파와 택지 부족으로 주택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내년 건설업계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내실을 키우지 않으면 일부 중견건설사들은 현금 흐름이 악화돼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