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1인 가구인 시대에 혼자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영화 보는 ‘혼자라이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혼자 살건 배우자가 있건 자녀가 있건 모두가 혼자만의 ‘1인용 삶’을 격렬하게 로망한다.
직장인들은 평일 점심시간에 동료와 밥 먹기보다는 헬스장이나 문화센터로 가서 자신만의 취미를 가꾼다. 회식 때 노래방에 몰려 가는 건 싫지만 혼자서 마음 편하게 부르는 코인노래방은 즐겨 찾는다. 육아와의 전쟁을 치르는 전업주부들은 육아용품 하나를 사면 내 시간 10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육아는 장비빨”을 외친다. 퇴근한 직장인들은 잠들기 전 침대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거나 온라인쇼핑에 빠진다.
내년도 소비 트렌드 변화를 분석한 책들은 하나같이 2020년 핵심 키워드를 외로움, 고독으로 짚었다. ‘2020 트렌드 노트’(북스톤 출간)는 ‘혼자’는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삶을 꾸려가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2020 트렌드 모니터’(시크릿하우스 출간)는 ‘외로움의 크기’가 대중 소비자들의 삶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들 트렌드 분석서를 읽다 보니 특히 2030세대의 고독이 절반쯤은 자발적일지 몰라도 나머지 절반은 비자발적인 상황 때문인 것 같아 ‘위기의 청년세대’가 새삼 걱정스러워진다.
종합 리서치회사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과 보내는 세대일수록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1순위 세대인 20대(57.5%)가 평소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낀다(67.2%)는 응답률은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항상 타인과 연결돼 있다고 믿는 젊은층이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것이다. 왜 외롭냐는 질문에 20대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급기야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이유 톱 5에는 본인의 경제적인 문제(39.0%), 집안의 경제적 능력(33.9%)이 1, 2위에 올랐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외로움,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귀결됐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않고 패자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했으며 타인을 더불어 살아야 하는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쯤 되면 이들에게 외로움이란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공동체나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국은 외로움을 사회적인 질병으로 간주하고 지난해 1월 ‘외로움 담당 장관’ 직을 신설했다. 많은 국민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이는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며, 국가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판단에서다.
젊은층의 경제적인 불안감에 따른 외로움은 최악의 청년 실업이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다.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 한 청년세대의 ‘헬조선’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국가 기능이 실종되다시피한 요즘, 각 정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에 구애 작전을 펴고 있지만 과연 정치권이 청년들의 이런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고 청년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청년세대를 위한 복지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 취업 지원, 주거비 지원, 무상교육 확대, 청년세대를 위한 기본소득제 시행 등 가용한 카드는 다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청년세대가 무너지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오늘, 비자발적으로 ‘나홀로 집에’ 있게 된 청년 세대에 미안하기 그지 없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