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자법정 구축 사업과 관련한 입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수백억 원대의 일감을 몰아주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법원 공무원들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입찰 비리에 가담했으나 이를 언론 등에 제보한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법원이 선처를 베풀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강모(53) 전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과장과 손모(51) 사이버안전과장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법원행정처 행정관 유모 씨는 징역 6년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받았다.
이들에 대해 선고한 1억~7억 원대의 벌금과 추징금 액수는 1심과 같이 유지됐다.
재판부는 “거액의 뇌물을 받아 공무원 직무의 신뢰를 훼손한 죄책이 무거우나 법원의 전산 분야 공무원으로서 재판 업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아 재판과 관련한 신뢰를 훼손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양형기준상 일반직 공무원에 적용하는 형량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입찰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장비 공급업체 직원 이모 씨는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날 선고유예 판결에 따라 석방됐다.
재판부는 “이 씨가 범죄 행위를 언론에 제보하고, 의원실과 소통하면서 입찰비리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노력해 이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다”며 “피고인이 공범이긴 하나 그렇기에 내부고발자가 돼 제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원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전자법정 사업 입찰을 따낸 전 법원행정처 직원 남모 씨도 징역 6년에서 4년으로 감형받았다. 남 씨는 2007년 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법원의 실물화상기 도입 등 총 400억 원대 사업을 따냈다.
남 씨와 공모해 입찰담합 등에 가담한 납품업체 관계자들에게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원행정처 공무원들은 남 씨 회사가 입찰을 따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뒷돈을 챙긴 정황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입찰 정보를 빼돌려 남 씨에게 전달하거나 특정 업체가 공급하는 제품만 응찰할 수 있도록 조건을 내거는 등 업체를 사실상 내정한 상태에서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 씨는 법원 공무원들에게 6억9000만 원에 이르는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