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나 그 2·3세가 기업의 '책임경영'보다는 지배력이나 잇속을 챙기는 데 치중하는 현상이 더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와 내부거래위원회 등 이사회의 경영 감시기능이 강화되고 있지만 상정 안건 중 원안가결 비율이 거의 100%에 달해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19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9일 공개했다.
분석대상은 올해 지정된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초액 5조 원 이상) 59개 중 신규 지정된 2개(애경·다우키움)과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농협을 제외한 56개 집단 소속 회사 1914개다.
이 가운데 총수가 있는 49개 집단 소속회사 1801개 중 총수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7.8%(321개사)였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7.4%(133개사)다. 이는 전년대비 각각 3.8%P(포인트), 0.8%P 감소한 것이다.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가 많을 수 록 그만큼 총수일가가 기업 경영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실제 경영활동에 참여하고,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손해배상책임, 형벌적책임 등 이사와 관련한 책임 등에서 벗어나려는 부분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부영(79.2%), KCC(78.6%), 셀트리온(70.0%), SM(69.2%) OCI(57.9%) 순으로 높았고, 삼천리(0.0%), DB(0.0%), 미래에셋(0.0%), 한화(0.0%), 코오롱(2.4%) 순으로 낮았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은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대림, 미래에셋, 효성, 금호아시아나, 코오롱, 한국타이어, 태광, 이랜드, DB, 네이버, 동원, 삼천리, 동국제강, 유진, 하이트진로 등 19개로 전년보다 5곳이 늘었다.
이중 한화, 신세계, CJ, 미래에셋, 태광, 이랜드, DB, 네이버, 삼천리, 동국제강 등 10개 집단은 총수 2·3세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반면 총수일가는 기업집단의 지배력이나 이득 확보 차원에서 유리한 회사에는 적극적으로 이사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는 주력회사(41.7%), 지주회사(84.6%),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56.6%) 등에 집중적으로 이사로 등재됐다. 전체 회사 대비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인 17.9%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특히 총수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59개 사) 중 사익편취 규제 대상(27개 사) 및 사각지대(13개 사)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7.8%에 달했다. 공익법인의 경우 총수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58개)에 집중적으로 이사로 등재(74.1%)됐다.
이사회의 작동 현황을 보면 내부 감시 기능을 높이려는 장치 도입이 확대되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56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상장사 250개의 사외이사 비중은 2016년 50%를 넘어선 이래 증가 추세를 보이며 51.3%를 기록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58.9%→63.6%), 감사위원회(73.1%→76.4%), 보상위원회(26.9%→28.0%), 내부거래위원회(35.6%→41.6%) 등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비율도 전년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이사회(99.64%) 및 이사회 내 위원회(99.41%)에 상정된 안건들이 대부분 원안 가결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의 경우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다.
내부 감시 기능을 담당하는 사외이사나 위원회가 여전히 '거수기'나 '예스맨'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있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으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에 이어 연속으로 지정된 54개 집단의 국내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비율(77.9%→78.7%)은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했다. 반대 비율(9.5%→7.1%)은 감소했지만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사외이사 선임 등에서 반대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소수주주권 행사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고 있으나 활용 수준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으로 집중투표제의 경우 전체 상장사(250개 사) 중 4.4%(11개 사)가 도입했지만 집중 투표제를 통해 의결권이 행사된 경우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없었다. 전자투표제는 도입회사 비율이 전년보다 8.7%P 증가하긴 했지만 이를 통한 의결권 행사비율(2.0%)은 0.1%P 증가하는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