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나 역시 교육정책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다른 문맹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내년 봄 이사를 하려고 대출 상품을 비교하면서 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지 고민하던 중 ‘나는 왜 돈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했고 적금도 들면서 나름대로 절약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서울에서 방 2개짜리 집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금융 문맹이었다. 글자를 읽지 못하듯이 금융에 대한 지식과 활용도 면에서 약했다. 10여 년 학교를 다녔지만 금융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늘 위험보다는 안전을 강조하면서 아끼고 아껴서 저축만 했다. 1980년대에 20%의 고금리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며 저축만 잘해도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부모 세대도 금융을 잘 몰랐다.
내가 금융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이후였고 주식이나 펀드에 대해 공부하고 투자한 것도 최근이다. 집을 구하기에 돈이 부족한 것은 집값이 급격하게 오른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돈을 불리는 것에 대한 관심도 부족했다.
현대는 금융자본주의 시대다.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삶의 많은 부분은 금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2018년 실시한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점수(64.9점)보다 낮다. 우리 사회에 금융 문맹자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OECD가 30개국 정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 국가의 90% 이상이 ‘개인의 금융 문맹이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심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최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로 금융교육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8~10월 금융교육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달에 금융교육의 체계화와 효율화를 위한 ‘금융교육 종합방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금융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국가 전략 차원에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은 2014년부터 만 11~16세 학생에게 금융교육을 의무화했다. 미국은 45개 주에서 금융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돼 있다.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국민들의 전반적인 금융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20~30대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금융교육에 있다. 이제 금융교육을 의무교육 체계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