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가운데 비교적 선전한다는 평가를 받던 백화점이 이번 인사에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중 고무적인 성과를 낸 패션 계열사 대표를 백화점 수장으로 발탁하며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신세계그룹이 패션 계열사와 백화점 부문의 대표를 맞바꾸는 인사를 단행했다. 신세계그룹이 1일 자로 단행한 이번 인사에서 차정호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를 신세계백화점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신세계백화점 장재영 대표를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이사에 내정했다.
이번 인사는 유통업체인 백화점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인사로 풀이된다. 국내 패션 시장이 쪼그라든 가운데 패션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새로운 먹거리인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며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차정호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다. 차 대표는 2017년 1월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이사로 부임한 후 2016년 대비 2018년 매출을 23.7% 늘렸고 영업이익을105.3%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 신장률 역시 각각 23%, 224%를 기록했다.
이러한 눈에 띄는 성과의 배경엔 화장품 사업의 성공이 있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2년 토종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이후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출시하고 판매 채널을 중국인 관광객이 접근하기 쉬운 면세점을 중심으로 확대하며 화장품 사업을 전략적으로 펼쳤다. 이러한 차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화장품 사업 매출은 2016년 321억 원에서 지난해 2477억 원으로 7.7배 성장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비디비치에 이어 지난해 신규 브랜드 연작을 론칭했고, 수입화장품 사업에서 딥티크, 아워글래스 등 신규 브랜드를 강화했다. 또 지난 9월에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비디비치 첫 해외 매장을 열며 해외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신세계그룹은 화장품 사업을 앞세워 신세계인터내셔날 매출 신화를 쓴 차정호 대표가 오프라인 유통채널에서 또한번 혁신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사업 다각화, 해외 진출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금 백화점은 업계 자체가 저성장세인 만큼 온라인 강화 등 회사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을 적임자라 판단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패션 계열사 한섬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대표를 백화점 수장에 앉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20년 1월 1일부로 단행할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김형종 한섬 대표이사 사장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했다.
김 사장은 1985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뒤, 현대백화점 목동점장, 상품본부장을 거쳐 현대백화점그룹이 한섬을 인수한 2012년부터 한섬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다. 한섬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패션 브랜드를 정리하고,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성장했다. 한섬 인수 첫해인 2012년 매출은 4964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조 2992억 원까지 성장했고,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710억 원에서 920억 원까지 증가했다.
한섬은 10여 개 브랜드를 정리해 기존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주력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한섬은 지난해 시스템, 오브제, 오즈세컨, 더캐시미어, SJYP 등 8개 브랜드 제품을 미국, 대만, 홍콩 등 10여 개국에 150억 원 규모로 수출했고, 여기에 SJSJ 중국 진출까지 성사되면서 3년 후인 2022년 기준으로 수출 규모가 연간 4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울러 한섬은 온라인에서 노세일 전략을 고수하는 대신, 온라인 전용상품과 더한섬닷컴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자체 브랜드를 선보여 충성 고객 확보에 주력했다. 그 결과 더한섬닷컴의 매출은 오픈 첫해인 2015년 60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800억 원까지 성장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은 프리미엄 아울렛 등 신규 점포 개점이 예정돼 있는 만큼 한섬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킨 김 대표의 사업성과 추진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6월과 11월 대전과 남양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오픈하고, 2021년 1월에는 여의도 파크원 개점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