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과 만난 함경도 산천굿 설화…화려한 무대·허물어진 경계

입력 2019-1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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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뮤지컬과 국악의 만남 시도

▲'붉은 선비' 무대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국악원)
▲'붉은 선비' 무대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산천굿은 함경남도 함흥 지방의 망묵굿에서 행하는 굿거리로 팔도의 명산대천에 기도해 망자(亡者)의 사후 안주와 그 유족의 길복을 비는 의식이다. 주로 무당이 혼자 장구를 치면서 말과 노래로 ‘붉은 선비와 영산각시 무가(巫歌)’를 부르는 것으로 구성된다.

글공부를 하던 붉은 선비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켜야 하는 네 가지 금기에 대해 듣는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가는 과정에서 금기를 모두 어기게 되고, 용으로 승천하는데 실패한 대망신(大亡神)이 붉은 선비를 잡아먹으려 한다. 이때 붉은 선비의 아내 영산 각시가 기지를 발휘해 대망신을 물리친다. 그 시신을 불태워 재를 팔도에 뿌리니 백두산, 금강산, 삼각산 등 팔도명산이 돼 사람들이 산천에 굿을 올려 길복을 얻게 한다는 이야기다.

함경도 산천굿 신화가 무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은 지난 19~2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랐다. 국악과 뮤지컬의 만남은 처음부터 기대를 모았다. 더군다나 산천굿, 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의 ‘뮤지컬화’라니.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구성이다. 국립국악원은 2년 전부터 이 공연을 기획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구조는 영화 ‘신과함께’를 떠올리게 한다. 저승길을 안내하는 ‘문지기’는 염라대왕의 역할을 한다. 인간의 자기중심적 오만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도 유사하다.

‘붉은 선비’는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진정으로 자연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의 신성을 훼손하고,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큰 화를 가져오게 한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붉은 선비인 ‘지홍’과 영산 각시인 ‘영산’이 대망신을 고이 화장해 팔오 산천에 뿌려 산신령으로 거듭나게 되지만, 이 역시 한계를 지녔다는 게 핵심이다.

극은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다. 지홍과 영산, 이들을 해치려는 악귀들은 무대 밖에서도 등장한다. 때로는 관객석에서 튀어나와 시선을 압도한다. 무대 연출은 천장을 비롯해 관객석까지 고려한 듯하다. 산이 불타는 장면을 표현할 때 천장을 보면 잿빛이 흩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사진제공=국립국악원)

화려한 무대 장치도 볼거리다. 흰 사슴이 금기를 어긴 인간 때문에 천장에 매달리거나, 지홍이 불 속에 갇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용단이 붉은 천을 휘두를 때는 어두움 속에서도 또다른 빛이 느껴진다.

다만 2년 동안 국립국악원에서 계획해 이뤄진 작품인 만큼 무대 장치를 다른 곳에 그대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하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풍월주’, ‘청 이야기’ 등의 연출로 참여한 이종석 연출이 총연출을 맡았고,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작가인 강보람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을 맡은 이지수 감독이 음악감독으로 합류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미술감독을 맡아 ‘인면조’를 제작한 임충일 감독도 함께했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재연 여부에 대해 “올해 초연작이기 때문에 공연 이후 평가 등을 종합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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