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200조 원 규모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패권경쟁에 불씨를 댕겼다. 퇴직연금 수익률 높이기가 화두로 부상하는 가운데 수수료 개편 등 질적 성장을 위한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입사 후 퇴직할 때까지 최소 20년 이상 장기간 위탁 운용된다. 결국 수익의 안정성과 함께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수수료가 상품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국민은행은 11일 금융권 최초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적립 금액을 연금으로 수령받는 고객에 운용관리 수수료를 면제하고 가입한 퇴직연금이 손실이 날 경우에도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 고객 수익률 관리를 통한 고객과의 동반성장을 핵심 과제로 삼고,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연금 대표 금융그룹’으로서 퇴직연금 시장의 질적 성장을 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앞서 금융권에서 가장 먼저 수수료 감면을 내세운 곳은 신한금융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올 7월부터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익에 손실이 날 경우 수수료를 받지 않고, 관리 수수료는 최대 70% 감면하는 방향으로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 또 만 34세 이하에 가입하면 운용관리 수수료를 추가로 20% 깎아주고, 10년 이상 가입하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수수료를 최대 70% 감면받을 수 있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더불어 사회적 기업은 수수료의 50%를 우대하고 확정급여형(DB)·확정기여형(DC) 30억 원 이하 기업과 IRP 1억 원 미만 고객에게는 수수료 인하 등 혜택이 제공된다. 이는 손실이 나면 펀드에 운용된 적립금에 한해 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이날 국민은행이 발표한 전체 적립금에 대한 수수료 면제와 다소 차이가 있다.
앞서 우리은행도 지난달부터 퇴직연금 수수료를 최대 70% 감면하고, 목표 수익률 이하 손절매 구간 진입 시 자동환매되는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한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사회 초년생 때부터 연금자산을 준비하려는 만 19세부터 34세 미만 가입자에 대해 개인형 IRP 수수료를 70% 인하했다.
이처럼 금융권이 퇴직연금 개편 작업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는 것은 ‘수익률 부진’이 이어지면서 노후 대비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200조 원 규모로 커졌지만, 수익률은 연평균 1%대에 그치고 있다. 원리금 비보장형의 경우 3년, 5년 장기 수익률도 예금금리보다 못한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에 고객 수익률은 뒷전인 채 가입자 유치 경쟁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수수료 개편 작업보다는 본질적으로 영업 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 상반기 기준 IRP 계좌에 적립금 없는 이른바 깡통계좌는 172만7980개로 전체의 45.8%를 차지했다. 은행들이 퇴직연금 가입자 늘리기에만 치중하는 영업 관행의 결과물이다. 이에 KPI(성과평가지표)를 퇴직연금 금액 목표나 가입자 수 확보 중심에서 수익률 관점으로 전환하는 등 퇴직연금 개편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