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내일이라도 다시 열리면 달러를 꿔서라도 올라갈 겁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소속 주방용품 제조 업체 신영스텐의 김정선(58) 관리부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31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난 김 씨는 개성공단 중단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의 1인 시위는 릴레이 형식으로 10월 1일부터 진행돼 이달 1일 자로 한 달을 맞았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이 첫 번째 시위자로 나서 이날까지 이어진 시위는 평일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진행된다. 시위는 11월 말까지로 예정돼 있으며 연장 여부는 검토 중이다.
이날 시위자로 나선 김 부장은 2001년도에 입사해 19년째 신영스텐에 몸담고 있다. 그는 2004년 12월 개성공단 가동부터 2016년 2월 폐쇄까지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가동 당시 신영스텐은 개성공단에 상주 직원을 두 명 두었고, 김 부장은 한 달에 서너 번씩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는 “처음 방문했을 당시 울컥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며 “2016년 폐쇄 결정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폐쇄가 신영스텐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신영스텐이 당시 물량의 99%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사장님은 더 하셨겠지만, 당시 저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폐쇄 뒤 신영스텐은 남북경헙 보험금으로 피해를 일부 보상받았다. 그러나 김 부장은 “개성공단에 생산 물량을 거의 다 의존했기 때문에 회사는 기계 설비를 마련하는 데 보험금을 다 쓸 수밖에 없었고, 매출액은 현재 회복을 했다고 해도 당시의 반토박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매출액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회사의 대출 신용도 떨어졌다. 김 부장이 개성공단이 재개하면 “달러를 꿔서라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10월 1일 릴레이 1인 시위 시작 당시보다 현재 개성공단기업협회의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금강산을 현지 지도하던 중 ‘남측 시설을 싹 들어 내라’고 지시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김 부장은 명함을 보여주며 “최근 명함을 새로 팠는데 ‘개성공단기업협회 소속’이라는 문구를 지웠다”고 했다. 개성공단 재개가 더는 희망적이지 않아서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북측의 금강산 시설 철거 발언에 관해 이날 “우리가 뒤늦게 감지했을 뿐 북한은 올해 봄부터 한국이 자주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즉, 올해 초부터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하노이 회담에서 잘 되겠지’ 하는 식으로 정부는 관망했다”고 지적했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노딜’로 끝났고, 그 뒤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각됐다.
정 회장은 개성공단 재개 문제도 지금의 금강산처럼 더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개성공단, 금강산 모두 북 측과 합이없이 중단한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도 북측의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가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상무는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6월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자 회동을 했지만 회담하고 ‘끝’이었다”고 비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2016년 5월 헌법재판소에 개성공단 중단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청구(2016헌마364)를 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이다. 그러나 3년 반째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은 “헌법소원은 우리나라 법치 국가인지, 사람 입맛대로 통치할 수 있는 인치 국가인지를 판단해달라는 의미인 것”이라며 “며 “법치주의 국가라면 폐쇄 조치가 위헌으로 판결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개성공단 폐쇄가 위헌이라고 판결이 나온다면 재개의 명분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