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런 심각한 태풍 피해를 외면하고 자국이 유치한 럭비 월드컵에만 열중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13일 오전 9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 비상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재해지 지원에 정부가 만전을 기하겠다며 자위대 등의 출동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금도 경찰·소방·해상 보안청뿐만이 아니라 자위대 2만7000명을 동원하고 구명 및 구조 활동, 실종자 수색, 피난 유도 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태세를 기동적으로 강화하겠다.”
비상재해대책본부는 지난해 7월 서일본의 호우사태 이후 처음으로 설치돼 일본 정부가 재난 대응을 격상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의 미지근한 움직임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비상재해대책본부 설치는 그런 비판을 무마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된 감을 씻을 수 없다. 우선 아베 총리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 이번 태풍 하기비스에 대해서도 일본 기상청이 초대형 태풍이라고 미리 경고했지만 정부는 국민 개개인에게만 태풍 대책을 맡겼다.
아베 총리는 태풍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 12일에도 트위터로 태풍에 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일본인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칭찬하는 데 바빴다. 13일에는 대책본부설치를 명령했지만 자신은 럭비 시합 관전에 열중했다. 언론매체들이 심각하다며 계속 속보를 쏟아냈던 13일 밤 9시 56분 아베 총리는 아래와 같은 트위터 트윗을 올렸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스포츠의 힘을 실감했는데 세계의 강호를 상대로 끝까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럭비 일본 대표 여러분의 용기는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이재민 여러분에게 건강과 용기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국가대표 최초의 16강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
바로 아베 총리는 인명 구조의 분기점이 재해 발생 후 72시간 이내라는 것을 무시하고 럭비 일본 대표의 스코틀랜드전 승리를 큰소리로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이재민 여러분에게 건강과 용기를 줄 것”이라는 말은 태풍 피해가 아직 속출하고 있는데도 이를 마치 과거의 일로 취급하고 있어 총리로서 있을 수 없는 태도를 보여준 셈이다.
당연히 아베 총리의 트윗에 일본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상해. 재해지 사람들은 럭비가 문제가 아닌데… 자기 집이 물에 잠겼는데… 전혀 배려를 안 하네.” “사망하거나 다치신 분, 집이나 차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집이 물바다가 된 분이 다수 있는데, 피난소에서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나?” “재해를 입은 분들은 솔직히 그럴 때가 아니잖아. 그런 상상력이 없는 당신은 총리 자격이 없다.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런 말은 세월이 지난 후에 하는 말이다. 재해 직후에 한 나라의 총리가 하는 말이 아니다.” “비난하신 분들은 럭비를 볼 여유 따위는 없다. 하물며 가족을 잃거나 가족의 행방을 모르는 사람의 불안이나 슬픔이 치유될 수가 없다. 아베 총리의 말은 너무 가벼워.”
9월 8일 일본을 강타한 태풍 ‘링링’ 때도 아베 총리는 태풍 피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흘 뒤에 이재민을 무시하면서 개각을 단행했다. 당시 지바현에선 초기에 50만 가구 이상이 정전 상태였고 복구까지 3주나 걸렸다.
아베 정권의 종언이 시작된 느낌이다. 아베 총리는 12월 중의원 선거를 치를 생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다시 자민당이 선거에 승리한다면 헌법 개정과 아베 정권의 독재를 막을 길이 사라져 버릴 것이고 한일 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