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제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이달 중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결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에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하며 통보한 데드라인이 23일이기 때문이다. 15~16일엔 WTO 이사회도 열린다.
WTO 협정상 개도국은 보조금과 관세 제도 등을 운영할 때 선진국의 3분의 2를 이행하면 된다. 한국은 농업 부문에서만 개도국 혜택을 받고 있다.
정부는 겉으론 '신중 검토'를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일찌감치 포기 쪽으로 가닥을 잡고 '군불 때기'에 나섰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대외경제장관회의에 개도국 지위 문제를 상정하며 "향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농업이 받고 있는 기존 혜택에는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 쪽으로 기운 일차적 요인은 미국의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개도국 포기를 요구하며 제시한 요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회원국 △1인당 국민소득 1만2056달러 이상 국가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등이다. 네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 나라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33개국이지만,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은 네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나라가 23일까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무역대표부(USTR)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제재에 나설 계획이다. 여기에 7월 이후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잇따라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면서 한국의 압박감은 더욱 커졌다.
한국 농업의 외형적 성장도 정부의 고민을 키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생산 비중, 전체 인구 대비 농민 수 등 농업 지표에서도 한국은 선진국과 거의 차이가 없어서다. 개도국 지위를 지킬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다고 해도 그간 한국 농업이 누리던 관세ㆍ보조금 혜택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다고 해도, 차기 농업 협상까지는 기존 관세ㆍ보조금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앞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나라들이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ㆍ인도 등의 갈등으로 차기 농업 협상은 타결이 불투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선진국 자격으로 차기 농업 협상에 참여한다고 해도 쌀 등 주요 농산물은 '민감 품목'으로 정해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다. 일본 역시 선진국 자격으로 WTO에 가입하며 쌀 등을 민감 품목으로 지정했다.
다만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비한 농업 체질 개선 대책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다. 농산물 가격과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제는 차기 농업 협상에서도 규모를 제약하지 않는 '허용 보조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가격에 연동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행 직불금 체계는 차기 농업 협상이 타결되면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와 함께 수급 조절 제도 개선과 농촌 개발 활성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