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6개월 유예’ 카드가 냉대를 받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유예 조건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더라도 이주·철거 단계에서 시간이 지연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의 논란만 잠재우려는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부동산 보완 대책의 참고자료로 배포한 서울시 정비사업 단계별 추진 현황을 보면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54곳, 철거를 마치고 착공에 들어가 일반분양을 앞둔 단지는 7곳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1일 ‘10·1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안을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 전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거나, 신청한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내년 4월까지 입주자모집(일반 분양)을 신청하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공포가 이달로 예정돼 있는 점을 고려해 6개월의 시간을 준 것이다.
문제는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더라도 분양 절차에 돌입하기까지 반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빠듯하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의 추진 절차를 보면 관리처분인가 이후 ‘이주→철거→착공’ 단계를 거쳐야 일반 분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주와 철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우선 재개발·재건축 추진을 반대하는 주민이 있거나, 주택(조합원 분양)이 아닌 현금으로 보상받으려는 현금청산자와 조합 간 갈등이 발생하면 이주 기간은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다.
이주를 마쳤다고 해도 철거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때 건물의 건축자재에 석면이 함유됐다는 사실이 발견될 경우 철거 기간은 또 길어질 수 있다. 석면의 위해성이 대두되면서 철거 방법에 대해 여러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환경단체 등과 이견이 생기는 상황도 발생한다. 철거를 100% 마쳐야 그 다음 단계인 착공으로 넘어갈 수 있다. 착공에 들어가야 분양가 상한제 6개월 유예 조건인 일반분양을 할 수 있다.
대다수 재개발·재건축 조합은 이주부터 착공까지 절차를 마치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분양을 마친 재건축 아파트의 이주·철거 기간을 보면 1년 이상 넘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 8월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514가구)으로 분양을 마친 서울 동작구 사당3구역(재건축 단지)의 이주·철거 기간은 1년4개월 소요됐다. 2016년 ‘디에이치 하너힐즈’로 분양한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도 이 기간이 1년 가량 걸렸다.
최근 청약을 마감한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4차아파트(‘역삼 센트럴 아이파크’)의 경우 이주를 완전히 끝마치는데 10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2008년 첫 이주에 나섰으나, 일부 주민들의 이주 반대 등으로 마냥 시간만 흐르다 지난해 겨우 이주를 마친 것이다.
결국 현재 이주를 끝내고 철거에 들어갔거나, 철거를 마친 재개발·재건축 단지만 이번 6개월 유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수혜 단지로는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철거 중), 서대문구 홍은동 제2구역(철거 완료), 서초구 신반포14차(거의 철거 완료), 신반포15차(철거 완료) 등을 꼽을 수 있다.
업계에선 6개월이라는 분양가 상한제 유예기간은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공급 위축 우려와 소급적용 논란을 잠시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이주를 앞둔 A조합 관계자는 “지금 당장 이주를 개시하더라도 6개월 안에 철거까지 마무리하기는 무리”라며 “정부가 무슨 기준으로 유예기간을 정한 것인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주·철거 기간을 충분히 고려해 6개월이란 기간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