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축가금류 시장과 무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사육 돼지 수는 7억6900만 마리.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억3300만 마리가 중국에 있다. 돼지열병이 휩쓸면서 이미 살처분된 돼지만 1억 마리에 달하고, 나머지도 날을 받은 상태나 다름없다 하니 지구에 남은 돼지는 3억3600만 마리쯤 될 테다. 이미 돼지열병이 발생한 나라들도 빼야 한다. 약 3000만 마리를 사육하던 베트남도 공식적으로 500만 마리 이상을 살처분했다. 청정지역은 7300만 마리를 보유한 미국을 포함한 미주지역 정도인데, 이를 근거로 계산해 보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돼지는 기껏해야 1억~2억 마리 남은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돼지고기를 먹을 기회는 얼마나 남았을까. 중국의 한 해 돼지고기 소비량은 대략 5500만 톤가량. 반면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는 4500만 톤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전 세계 돼지고기 수출량은 다 합쳐도 800만 톤뿐이다. 돼지고기를 모두 중국인에게 ‘몰빵’ 해줘도 매년 200만 톤이 모자라는 셈이다.
아직은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만 돼지열병이 발생했고, 마트에도 돼지고기가 넘쳐나니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우선 서울대 문정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한반도 돼지 절멸’을 언급하며 돼지열병이 국가적 재난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교수는 멧돼지에게 집단 발병이 일어나는 시점이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멧돼지는 이 병에 걸려도 죽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옮길 수 있다”면서 “자료들을 찾아보면, 멧돼지에게 집단 발병이 일어나면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토착화되어 이 땅에서 거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된다고 한다”고 했다.
정부 말마따나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치자. 문제는 앞으로다. 육식러들에겐 저주와도 같은 이야기가 유럽 등에서는 현실이 됐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2007년에 조지아공화국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된 이래 이 지역 사육돼지와 야생 멧돼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퍼져 지금도 여러 동유럽 국가들에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 선진국이 많은 서유럽에는 동유럽보다 앞선 1960년대 이 병이 퍼져 30년 넘게 걸린 끝에 겨우 진정됐지만, 이탈리아 일부 섬지역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돼지열병이 한반도에 풍토병으로 자리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농협경제지주가 발표한 축산물 자급률을 보면 돼지고기는 63%다. 낮지 않은 수치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14%나 떨어졌고, 매년 낮아지는 중이다. 그럼 지금처럼 수입해서 먹으면 될까? 앞서 말했듯 전 세계 모든 돼지를 싹쓸이해도 중국의 수요조차 채우지 못한다. 돼지 없으면 소고기를 먹으면 될까? 다시 자급률을 보자. 소고기 자급률은 32%. 돼지의 절반 수준이다.
이도저도 안 되면 채식주의자로 살면 된다고?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27% 정도로 OECD 꼴찌 수준이다. 캐나다(258%), 미국(127%), 독일(92%) 등 주요 선진국과 게임이 안 되는 것은 물론, 75%인 북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급률만 놓고 보면 우리가 북한에서 식량원조를 받아야 할 처지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선언이 자폭이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거둬들인 것도 비슷한 이유다. 중국의 사료용 콩 자급률은 10%대에 불과하고,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철없는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라질과 호주 등 남반구 지역에서 수확된 콩이 공급됐기 때문인데, 남반구는 지금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콩을 새로 심어 수확하려면 남반구의 가을, 그러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국에 밉보이면 중국인들은 내년부터 비루먹은 돼지 껍데기나 뼈다귀탕만 먹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태양계 먹거리 블랙홀인 중국이 이럴진데, 대한민국은 풀이나 뜯으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는지. 검찰개혁도 좋고 정의로운 나라도 좋다. 하지만 대통령님, 소외된 육식러에게도 제발 관심 좀…. w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