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때 모 장관은 미리 일정으로 잡혀 있던 지역 국회의원 행사에 참석하려다 급히 취소하고 태안 사고 현장으로 내려간 적이 있다. 사고 당시 이 장관은 태안 사고가 다른 부처 장관 소관이라 그쪽 장관이 내려가는데 굳이 자신이 함께 내려갈 필요가 있느냐며 기존 일정을 강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 사고의 관할을 떠나 사고 책임은 당연히 이 부처에 있다는 정서가 팽배했다. 다행히 ‘국민정서법’에 걸린다는 참모들의 강력한 만류에 따라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태안 사고 현장에 내려가 큰 화를 모면한 적이 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은 ‘국민정서법’을 전면에 내세워 대대적인 공격을 펼치는 모양새다. 인사 검증에 사돈에 팔촌까지 거론되면서 사실 여부를 떠나 본인이 아닌 가족과 주변 친인척의 사생활 침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은 조 후보자의 ‘불법 사모펀드’, ‘위장 전입’, ‘차명 부동산’, ‘동생 부부의 위장 이혼’ 등 세간의 의혹을 내세워 ‘막장 드라마’, ‘가족 사기단’,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걸핏하면 ‘국민정서법’ 운운하던 조 후보자가 이제 와 적법 운운하는 모습이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각종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는 “국민 정서상 조금 괴리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모든 절차는 적법했다”고 해명했다. 사실상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인사 청문회가 이제는 후보자 정책 자질 심사보다는 개인 도덕성 의혹과 가족의 불법 의혹을 검증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당의 ‘국민정서법’ 전략은 현재까지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이들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국민정서법’상 한국당이 받는 비난의 정도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인사검증에서 ‘야당이 당연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지’라는 국민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법무 행정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라 더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의혹이 제기된 관련자들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의혹의 꼬리표를 떼기 힘든 데다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동안 ‘국민정서법’상 논란이 된 사건들 상당수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 사생활 침해만 남긴 게 사실이다. 물론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조 후보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도덕성 비난과 사법 처리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도덕성 검증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무차별한 폭로전은 부작용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인사청문회법은 제왕적 대통령의 보은인사, 낙하산 인사 등 인사권 오남용을 막고 도덕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를 뽑고자 2000년 6월 처음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 망신주기나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인사청문회 무용론’ 목소리가 높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도구로 삼은 적이 있어 부메랑을 맞고 있다. 결국 정권이 바뀌어도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 이참에 인사청문회 절차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먼저 정권이 바뀌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인재풀을 확대해 이 풀에서 후보자로 복수 추천된 시점부터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후보자 추천 인사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 도덕성 검증과 정책역량·전문성 검증을 나눠 진행할 필요가 있다.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되 사전에 야당에 검증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법률 위반 등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알려야 할 부분은 공개해야 한다. 정책역량·전문성 검증은 지금처럼 공개로 하고 이 부분에 심각한 하자가 있으면 청문회 결과가 대통령 인사권에도 구속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