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심상치 않다.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를 알리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하루 만에 진정된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은 그 전조다. 시장 심리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2위와 4위 경제대국인 중국과 독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경제의 하강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와 현실화하는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격화하고 있는 ‘홍콩 시위’는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들이다. 이탈리아 연정붕괴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 등도 변수다.
무엇보다 경제 대국들의 경기 둔화가 뚜렷하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내놓은 미국 경기순환 지표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가 향후 12개월간 경기침체에 빠져들 가능성을 30∼35%로 높였다. 전 분기 25∼30%에서 한 단계 올라갔다. 2분기 기업투자도 0.6% 감소했다. 중국의 7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에 그쳤다. 17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세다.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1% 감소하는 역성장을 했다. 홍콩 상황도 변수다. 홍콩 당국은 올 성장률을 당초 ‘2∼3%’에서 ‘0∼1%’로 낮췄다. 홍콩은 우리 수출 4위국이다.시장 불안에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금값이 온스당 1500달러를 돌파했다. 2년 내 2000달러까지 갈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8월 들어 국내 시장에서 1조8500억 원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겐 최악의 환경이다. 정부가 인정한 ‘경기 부진’이 벌써 5개월째다. 수출은 9개월째 내리막이다. 한일 경제갈등까지 겹쳤다. 다수의 해외 IB는 우리 성장률을 1%대로 낮췄다. 말 그대로 비상상황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적자생존’의 경쟁을 하는 우리 기업들이 적어도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하게 해선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경제 극일’만 해도 그렇다. “연구개발 및 기술 부문에서 일본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유연성과 환경규제 등 기업들의 활동여건이 최소한 우리가 불리하지 않도록 법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의 말은 열악한 기업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와 정치권은 입만 열면 4차 산업혁명을 외친다. 맞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미래가 걸린 승부처다. 자금 지원을 앞세운 정부의 요란한 구호와는 달리 현실 여건은 열악하다. 기술 자립은 먼 얘기다. 반기업 정서도 여전하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이다. 원격의료와 빅데이터, 공유경제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은 기득권층 반발과 정치권의 표 논리에 막혀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정치권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근 국회에 조속 처리를 건의한 법안만이라도 초당적으로 임하길 바란다. 4차 산업의 핵심 자원인 데이터의 자유로운 활용을 골자로 한 ‘데이터 규제 완화 3법’은 9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정치권이 눈치를 보고 있어서다. 일본은 이미 4년 전에 입법이 완료된 터다. 일자리 등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은 8년째 국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뒤늦게 정부가 내놓은 연구 개발 분야의 주 52시간 제도 예외 인정도 일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경기침체를 극복할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래선 이길 수 없다. 더 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들어선 곤란하다. 말의 성찬이 아닌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