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은 크고 작게 늘 있어왔지만 성공 사례는 손에 꼽기 어렵다. 불매운동이 냄비처럼 들끓다 식으면 불매운동을 촉발한 이슈는 개선되지 않고 잠시 자취를 감추다 나타나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세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매운동이 과거사에 대한 민족적 감정과 경제 제재라는 현실적 위협이 더해지며 국민의 삶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기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국내 유통가에선 어떤 불매운동의 역사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섬유유연제 대명사’였던 피죤 = 피죤은 오너의 갑질논란 이후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2009년 이후로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내리막길을 걷던 피죤은 2010년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점유율 44%를 기록하다 이듬해 28.6%, 2017년에는 점유율 20% 아래로 고꾸라졌다.
2012년부터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피죤은 2016년 다시 흑자로 돌아서며 실적 회복 중이다. 아울러 피죤은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서 올해 77위를 기록해 70위권에 진입했다.
◇‘대리점주 밀어내기 갑질’ 남양유업 = ‘갑질’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쓰이기 시작한 건 남양유업 사태 이후라는 평가가 많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은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욕설과 막말을 퍼부으며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강제 할당하고 판매를 강요했다. 당시 이 영업사원의 음성 파일이 공개되며 남양유업은 국민의 공분을 사 불매운동의 도마에 올랐다. 결국 남양유업은 음성 파일이 공개된 지 사흘 만에 밀어내기 갑질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갑질 사태 이후 불매운동의 타격으로 2013년, 2014년 영업손실을 기록한 남양유업은 반성하는 듯했으나, 홍원식 회장이 경영악화 와중에 더 많은 연봉과 배당금을 가져간 사실이 알려지며 또다시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아울러 남양유업은 올해도 대리점주에 대한 갑질 건으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등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갖가지 악재 속에서 남양유업은 갑질 사태 이전의 실적은 회복하지 못했지만,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1조 원대 매출을 기록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장본인 옥시 = 영국계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제품을 만든 기업이다.
하지만 사과는커녕 증거인멸, 책임회피를 일삼았고 이에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2016년 4월 옥시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당시 소비자들은 ‘옥시 OUT’을 외치며 모든 옥시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고, 유통판매점도 즉시 옥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불매운동의 여파로 옥시의 매출은 90% 급감했지만, 옥시는 여전히 한국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들은 옥시가 사명을 ‘RB코리아’로 바꾸는 등의 꼼수로 스트랩실, 개비스콘 등 의약품 판매 사업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불매운동을 재개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2013년 전사적 브랜드 리뉴얼을 실시해 CI를 레킷 벤키저(Reckitt Benckiser)에서 RB로 변경한 바 있으며, 그 이후 내부적으로 전 세계 지사를 RB Korea, RB Japan과 같은 약어로 칭하고 있다"면서도 "국내 공식 법인명은 변함없이 ‘옥시레킷벤키저’로 쓰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일본 불매운동… 전망은 =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가 일본기업에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통한 경제 보복에 나섰고 우리 국민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한 달이 넘게 지속되면서 전문가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불매운동은 일시적인 사건으로 시작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공유한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민족적 감정과 수출 규제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라며 “특정 기업이 소비자에게 사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인 만큼 이슈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언론이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고, SNS 등 전파력 있는 공간에서 이슈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져 더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