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 골프장은 1990년대 ‘성장제일주의’, ‘외형확장주의’의 초상이다. 그즈음 전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회원들의 분양대금, 즉 빚에 의존하며 골프장들이 들어섰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듯, 빚이야 갚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금융의 산물’인 만큼 회원제 골프장은 금융위기에 취약했다. 곧바로 부실로 이어졌고, 하나둘씩 회생의 기로에 섰다.
1027억 원. 서울 소재 한 골프장 회원들의 입회보증금 규모다. 입회보증금이란 한마디로 골프장 가입비다. 단 ‘보증금’인 만큼 돌려받을 의무가 있다. 골프장이 망하면 입회보증금은 곧 갚아야 하는 채무로 뒤바뀌고, 골프장 운영의 핵심인 수많은 회원은 한순간에 채권자로 신분이 탈바꿈된다. 이 골프장의 전체 부채는 1211억 원이다. 전체 빚의 약 85%가 수없이 많은 회원의 주머니 사정과 연관돼있는 셈이다.
이처럼 회원제 골프장은 ‘채권자들의 바다’다. 골프장을 수놓은 수많은 잔디처럼,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이해관계자들에게 빌린 돈으로 골프장의 자산이 구성돼있다. 그만큼 골프장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고, 회생절차까지 들어 갈 경우 가장 난관은 골프장 회원들 사이에 의견 불일치다. 심지어는 그룹별로 나눠 서로 다른 회생계획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회생계획안으로 대결을 펼치는 셈이다. 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골프장 법정관리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회생절차를 돌파할 것인지 심도 있는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중에 레이크힐스순천의 회생은 P-Plan(P플랜)과 스토킹호스 방식의 인가 전 제3자 인수·합병(M&A)가 결합된 방법으로 회생절차가 진행된 선구적인 사례로 꼽힌다.
◇ 첫 P플랜 사례…레이크힐스순천 = 지난해 2월 9일 레이크힐스순천은 하루 전 골프존카운티와 조건부 인수계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신탁채권자의 동의를 얻어 법원에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다. 법원은 레이크힐스 순천과 골프존카운티가 약정한 인수대금의 적정성 등 공정성 확보를 위해 스토킹호스 매각 방식을 결정했다.
레이크힐스순천은 같은해 3월 2일 조건부 인수자로 골프존카운티를 선정하는 내용의 사전계획안을 제출한다. 3일 후 회생절차개시를 결정하고 공개경쟁입찰을 공고했다. 입찰 과정에서 강동그룹 컨소시엄이 730억 원의 인수대금을 제시했지만 스토킹호스인 골프존카운티가 인수대금 730억 1만 원을 제시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했다.
레이크힐스순천과 골프존카운티는 같은 해 4월 6일 확정된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2주 후에 열린 관계인집회에서 회생채권자 91.3%의 동의로 인가가 결정됐다. 회생법원은 5월 28일 회생절차 종결을 결정했다.
회생절차를 주관했던 법무법인 바른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기존 회생제도 대신 P플랜 활용을 결정했다. P플랜은 법원이 갚아야 할 빚의 규모를 빠르게 줄여주면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조정 방식을 말한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협의절차를 앞당겨 둘 사이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고, 무엇보다 회생절차 기간을 단축해 기업가치를 보호한다는 장점이 크다.
바른이 회생개시 결정 이후 회생계획 인가를 받아내는 데까지 47일밖에 걸리지 않을 수 있던 이유다. 더욱이 바른 변호사들이 골프장 회원들과 채권자, 거래처들을 발로 뛰며 만나 설득한 결과였다.
특히 스토킹호스 방식 매각으로 채권자들에게 변제할 재원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골프장 영업은 기존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회원예약 및 부대시설 이용도 회생계획 인가 결정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 ‘P플랜’의 그림자...양평TPCㆍ버드우드CC = 레이크힐스순천처럼 P플랜을 통해 성공적으로 회생절차를 마무리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있다. 절차가 서둘러서 진행되는 만큼 신속성이 보장되는 만큼 채권자들이 관련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평TPC골프클럽(양평TPC)과 버드우드CC다. 둘 다 P플랜을 통해 회생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두 골프장은 모두 대중제로 전환해 영업을 개시했지만, 잡음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회생절차를 악용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양평TPC는 지난해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미 2017년 11월 유안타증권과 600억 원의 자금 차입에 대한 투자 확약을 받은 뒤였다. 회생계획안는 2개월 만에 인가됐다. 당시 책정된 양평TPC의 존속가치는 860억 원. 하지만 이와 달리 양평TPC의 재무제표를 보면 회생절차에 들어올 당시 자산가치는 1832억 원이었다. 가치가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버드우드CC도 마찬가지다. 버드우드CC는 2013년 이래 3차례 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모두 인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5월 네 번째 회생절차 신청에서 버드우드CC는 리딩투자증권로부터 채무자회사의 회생계획 인가결정을 조건으로 약 350억 원의 자금 차입에 대한 투자확약을 받고, 회생절차 개시신청과 동시에 사전계획안을 제출했다.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은 뒤 주채권자였던 일광레저개발은 출자전환을 거쳐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고, 회원들은 채무액의 30%만 현금·쿠폰으로 나눠 받았다. 하지만 버드우드CC도 존속가치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한 점이 뒤늦게 문제로 불거졌다. 회원들은 올해 버드우드CC가 과거 보유하고 있던 사천CC 주식가치를 실제보다 50억 원가량 낮게 평가해 청산가치를 낮추려 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현재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회생절차에서 기준가격이 중요한 것은 이를 기준으로 채무자들의 변제금액이 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회생업계 관계자는 “골프장 회생 사건에서 회원들의 변제금액을 결정하는 기준가격을 조정했다는 점은 회생절차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생법원장 “올해 회생법원 오는 회원제 골프장 많을 것”올해 회생법원을 찾게 될 회원제 골프장이 많아질 전망이다. 부실 골프장에 대한 공개매각 시 부채가 인수자에게 승계된다는 내용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18일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올해는 회원제 골프장 회생사건의 신청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언급했다.
회생법원장이 언급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명 ‘베니치아CC’ 사건이다. 베니치아CC 사건은 간단히 말해 골프장이 보유한 회원권 등의 부채가 인수자에게 승계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골프장 등 체육필수시설에 관해 담보신탁계약이 체결됐다가 그 계약에서 정한 공개경쟁입찰방식의 매각 절차나 수의계약으로 시설이 일괄해 이전되는 경우 인수인이 체육시설업자와 회원 간의 약정한 사항을 포함해 체육시설업의 등록 또는 신고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는지 여부를 따져야 했다.
앞서 원심인 대구고등법원은 2016년 4월 제3자 배정 신주인수 방식의 인수전 M&A로 진행되는 골프장 회생절차에서는 체육시설법 제27조가 적용되지 않아 입회보증금반환채무를 승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지만,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 경우 인수자의 골프장 인수 부담이 커진다. 회원권 부채로 인해 회생절차로 들어오는 골프장이 상당하기 때문에 공매절차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게 회생법원의 판단이다. 공매가 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회생절차 이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정형식 회생법원장은 “서울회생법원의 법인회생연구반 등을 통해 청산가치 산정방식 보완, 신탁채권자들과 회원권자들 사이의 형평성 보장방안 마련 등 골프장 회생절차 관련 회생절차 개선방안 마련하는데 힘쓸 생각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