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 쌍용차, 해고·기술유출...‘악몽의 9년’ 딛고 재도약 시동

입력 2019-06-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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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쌍용자동차, 마힌드라에 매각 후 회생 종결 ‘해고자 전원 복직’ 결실

2018년 12월 31일. 영하 17도. 71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 선다. 9년 만의 복직이다. 강산도 10년이면 바뀐다. “오늘 처음 입사하는 기분”으로 이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한 회사가 재정적 위기에 빠지면 1순위는 비용감축이다. 그중에서도 ‘인력감축’이라는 카드가 먼저 꼽힌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인력감축’이라는 공식이 통용된다. 2009년 회생절차에 들어갔던 쌍용차도 마찬가지였다.

◇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5명 중 2명’ 하루아침에 해직 위기 = “(쌍용차의 해고 결정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차 해직 노동자 153명의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다. “쌍용차는 (정리해고 당시) 국제 금융위기와 경기불황 상황에서 연구 및 신차 개발 소홀로 경쟁력이 약화됐고, 주력 차종의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 계속적 구조적 위기에 있었던 상황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2심에서 내린 ‘복직’ 결정이 뒤집힌 순간이다.

2009년 4월 쌍용차가 2405명에 달하는 정리해고 계획안을 발표한 지 5년여 만이었다. 노동자 5명 중 2명가량이 해고될 위기에 쌍용차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찬반 투표를 거쳐 총파업과 공장 점거에 돌입하고, 이에 사측은 직장폐쇄로 응수했다. 그런 와중에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장이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 96명이 연행됐다.

노조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부실화의 원인은 경영진을 비롯한 사측에 있는데도, 정작 문제가 가시화하자 ‘죄 없는’ 노동자들에게 원인을 뒤집어씌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쌍용차가 본격적으로 부실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된 것이 ‘악재’의 출발이었다. 매각가부터 당시 평가액의 절반 수준으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시장에서 도는 ‘짱룡자동차’라는 비아냥은 우스갯소리로 넘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상하이자동차의 손아귀에 들어간 쌍용차의 상황은 실제로 점점 악화됐다. 쌍용차의 신차 개발에 신경쓰지 않는 가운데 주력이었던 SUV 시장에서 현대차에 추월당했다. 심지어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가 개발한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이 기술은 앞서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한 것이었다. 인수 당시 약속했던 재투자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쌍용차는 직격탄을 맞고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 마힌드라 매각 후 점진적 복직… 작년 말 종지부 = 2010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새 주인 자리에 올랐다. 1년 뒤 쌍용차는 회생절차를 졸업한다. 이후 노조는 고공농성 등 복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는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 신입사원을 3대 3대 4의 비율로 단계적으로 채용하는 데 합의하는 등 상생할 수 있는 자구안을 찾기 시작했다.

2013년 무급휴직자(454명) 복직에 이어 2015년 노·노·사 3자 합의에 따라 2016년 2월 40명, 2017년 4월 62명, 지난해 3월 26명 등 세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자와 해고자에 대해 단계적 복직을 진행했다. 하지만 당초 노사의 해고자 복직 합의인 ‘회사의 경영 여건이 나아진다’는 전제 조건으로 인해 복직 대상자는 계속해서 기다려야 했다.

분위기가 급반전한 것은 지난해였다.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직접 요청하고 나서면서다. 이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중재를 진행했고, 9월 14일 남은 해고자 119명의 전원 복직 합의를 이끌어냈다. 쌍용차 노사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된 순간이다. 하지만 상처는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았다. 9년 동안 생계난과 질병 등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 3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 판매량 16년 만에 최대 실적… 흑자전환 달성할까 = 쌍용차 노사는 오랜 갈등을 매듭짓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쌍용차는 차량 고급화 전략으로 부가가치를 높여왔다.

올해 1분기 쌍용차 판매는 3만4851대로 전년 동기보다 13.7%(4187대), 코란도 브랜드가 구축된 2013년 1분기보다는 162%(2만1558대)로 개선됐다. 이는 2003년 1분기(3만9084대) 이후 16년 만에 분기 최대 판매 실적이기도 하다. 같은 기간 쌍용차 매출은 9332억 원으로 3%(262억 원) 증가했고,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5.4% 뛰었다. 반면 영업손실 278억 원, 당기순손실 261억 원 등 흑자전환에는 실패했다.

올해 쌍용차는 16만3000대 이상을 판매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이는 작년 판매량 14만3309대보다 약 14% 늘어난 규모다. 지금까지 최다 판매 실적이었던 2002년 16만 대를 넘어서는 실적이다.

관건은 수출 실적 개선이다. 내수에서는 티볼리 등을 앞세워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3월 이후로도 3개월 연속 1만 대 판매를 돌파하며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3위로 올라섰다.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는 2016년 깜짝 영업흑자를 제외하면 구조조정에 돌입한 이래 매년 수십 억~수백 억 원의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며 “더욱이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자동차 업황이 역대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어 고용 불안은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변수”라고 우려했다.

업계 “구조조정, 맹목적 인력 감축보다 치밀한 전략 중요”

“구조조정.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인력감축이죠.”(A 채권은행 관계자)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인력감축’이라는 공식이 불편한 진실로 통용된다. 부실기업이나 채권단이 인력 구조조정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즉각적이고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에 허덕이는 기업과 돈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에게는 최선의 카드다. 이와 함께 불필요한 노동력을 줄이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생산성과 몰입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짧은 호흡으로 유지되는 주식시장에서도 인건비라는 비용 감축은 ‘호재’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감축에 따른 비용에 비하면 그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고도 주장한다. 미국 경영학회의 연구에 의하면 인력을 감축한 기업 중 생산성이 증가한 곳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보다 못한 37%가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런 결과에는 인력감축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친다. 해직자가 겪는 고통과 그 가정의 황폐화뿐만 아니라, 회사에 남은 노동자의 직무 스트레스와 심리적 탈진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존자 증후군’이다. 이들 생존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이나 헌신은 낮아지고, 조직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는 곧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유능하고 모험적인 노동자는 떠나고, 반대로 떠나야 할 사람은 남게 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도 부작용 중에 하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소극적인 고용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 기업은 정리해고를 통한 직접적인 고용조정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용조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과다 해고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기업조직의 효율화를 위한 기업의 자구노력이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 교수는 “인력감축이 실질적으로 의도한 효과를 가져오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인력감축은 곧 선이라는 등식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개별 기관별로 치밀한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감축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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