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희의 뉴스카트] '뇌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입력 2019-07-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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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부 차장

과일가게를 새로 연 A 씨는 손님을 끌기 위해 사과 10개를 사면 덤으로 한두 개를 더 얹어주었다. 사과 가격이 오르자 A 씨는 기존에 제공하던 덤을 없앴다. 매장을 찾는 이들은 왜 가격을 올렸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A 씨는 원래 정가대로 판매했을 뿐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11~12개의 가격을 정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주류 리베이트를 이와 비교하면 좀 무리일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정가를 잊은 소비자의 행동과 리베이트를 당연시 여기는 주류업계의 풍토는 묘하게 오버랩된다. 국세청은 당초 7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리베이트 쌍벌제를 무기한 연기했다. 리베이트 근절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의식한 행보다. 쌍벌제를 둘러싼 찬반을 떠나 주류업계 종사자들은 ‘리베이트’가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오랜 기간 이어져온 관행을 뿌리뽑느냐, 유지하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 관행임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주류업계의 리베이트가 필요하다는 이들은 자영업자를 위한 ‘필요악’이라고 토로한다. 이들은 리베이트가 정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해 자영업자의 마진을 높이고 창업 비용까지 지원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출고가 1000원짜리 제품을 1100원에 받는 것과 1200원에 공급받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두 박스가 아닌 수십·수백 박스라면 단순히 100원 차이로 치부하기 어려운 비용으로 커진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1100원에 구입하는 소매상과 1200원에 구입하는 소매상이 판매하는 가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의 소주 가격이 대동소이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100원은 누가 부담하게 될까. 바로 제조사다. 제조사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출고가격을 인상한다.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적자를 감수하기 쉽지 않다는 변명도 뒤따른다. 이들의 적자 위기의 중심에 리베이트가 있다.

대형 도매상과 프랜차이즈에 주류 제조사가 제공하는 리베이트는 비단 가격 할인 효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6병들이 양주 한 박스가 7병, 8병으로 둔갑하는 소위 7팩, 8팩이 존재하고 각종 판촉물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주점 프랜차이즈는 가맹점 오픈 시 점주에게 ‘주류 대출’이라는 명목으로 창업비용을 지원해준다. 이 비용 역시 프랜차이즈 본사가 아니라 주류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출’을 미끼로 창업자를 유혹하는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이지만, 그 대출금은 결국 주류 제조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이다. 리베이트가 다양해지고 늘어날수록 제조사의 손실은 커지고 제조사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출고가를 올린다. 이는 결국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리베이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생존’이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주류산업협회는 리베이트를 ‘뇌물’이라고 규정하고 쌍벌제의 조기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뇌물’이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결국 스스로 자생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한 주류업계 인사의 쓴소리에 수긍이 가는 사람은 과연 기자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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