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적 금융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은 결국 투기적 자산소득의 기록적인 증가를 초래하였으며, 그 결과 미국 내 빈부격차 역시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커지게 되었다. 또한 세계화의 결과로 미국 내 단순 제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퇴조하면서, 이들 업종에 종사하던 백인 노동자의 일자리와 소득수준도 급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배경에서, 분노하고 있던 백인 노동자들을 겨냥하여 보호무역과 반이민 정책으로 이들의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리얼리티쇼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 현실이 되어버린 미국에서, 지난 2년 반의 트럼프 재임 기간 중 ‘미국 제일(America First)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다양한 정책들이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기존의 국제정치 및 경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기존의 국제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미국의 일방적인 힘과 영향력에 바탕한 양자간 협상 중심으로 통상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또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하여 국가안보를 이유로, 전대미문의 보호무역 정책과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반이민 정책을 통하여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무리하게 강제 축출하는 과정에서 큰 충격과 참사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핵 위기와 관련하여 전쟁도 불사하겠다면서 한반도 안보 위기를 극단으로 몰고 가다가, 느닷없이 김정은을 가장 친한 친구로 부르면서 롤러코스트 같은 행보를 보여왔다. 또한 지난 오사카 주요 20개국(G20)회의에서 환경문제 해결이나 여성 지위 향상 등 국제적인 협력 의제를 모두 좌초시킨 이후, 한국 방문에서는 즉흥적으로 판문점에서의 회동을 연출하여 리얼리티쇼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러한 트럼프의 롤러코스트형 정책 행보가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서, 트럼프발 세계 경제 위기를 유발할 것이라는 경고가 미국의 유력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 등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발 불황의 조짐은 올해 1분기 3.1%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이 2분기 1.3%로 주저앉은 사실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이처럼 미국의 최장기 경기 호황이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과 반환경 및 반이민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견 매우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듯한 트럼프의 정책 행보가, 적어도 트럼프의 단기적인 정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정책들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머지않아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이 가시화되면서 서민 소비자의 구매력이 하락함과 동시에, 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의 가격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이 현실화할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향한 강력한 보호무역 및 응징 조치는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로 이어진다는 계산에 근거하여, 적어도 2020년 대통령 선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유럽연합(EU)과 일본, 멕시코, 베트남, 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도 무역갈등을 높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계산에는 변함없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와 지역 안정화 구도를 만드는 노력보다는, 대선에서 유권자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리얼리티쇼의 주요한 소재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트럼프발 불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일방주의 정책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를 복구하는 노력이 절실하며, 이를 위한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북핵 문제의 해결 구도도 현재의 북미 양자간 구도와 함께, 관련 주변국들을 포함한 다자간 구도로 진행하는 것이 예측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