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쇠락’의 기운을 먹고 자랐다.철제 외벽과 슬레이트 지붕만이 우뚝 서있는 공장에도, 발길 닿지 않는 보도블록 틈새에도, ‘임대’ 팸플릿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오피스텔 앞에도, 한동안 공터로 남을 학교 부지에도.
13%.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군산 국가산업단지에서 차지했던 면적이다. 속절없이 떠난 두 거대기업의 빈자리는 여전히 군산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1년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 2년 사이, 이투데이가 군산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귀신같이 사라지던데요.”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동에서 4년 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여) 씨는 최근 주거래은행을 바꿨다. 원래 찾던 은행 지점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탓이다. 오식도동은 국가산업단지 안에 있는 마을이다. 타지에서 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위주로 형성됐다.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지난해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지금은 다들 흩어졌다. 김 씨는 “자영업을 하면 은행을 찾을 일이 많은데 차 타고 30분 거리까지 떨어진 곳까지 다닐 이유가 없어 거래은행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토로했다.
두 거대기업의 잇따른 공장 폐쇄 결정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한 곳은 ‘은행’이었다. 공식적인 공장 폐쇄 결정에 앞서 지점 철수를 단행한 은행도 나타났다. 노동자와 협력사들은 회사 측의 공식 발표 당일에야 접했던 청천벽력 같은 ‘공장 폐쇄’ 결정이었다. 일찌감치 소식을 감지한 은행들은 고객보다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이투데이가 지난달 18일 군산을 찾았을 때 산업단지에 남은 은행 지점은 IBK기업은행과 신한은행뿐이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만 남은 셈이다. 2016년 말 이후 은행 지점 6곳 중 4곳이 2년 새 단지를 떠났다.
가장 먼저 철수한 곳은 우리은행이다. 2017년 1월 군산공단지점을 없애면서 군산 지점과 통폐합했다. 군산조선소 폐쇄 6개월 전이었다. 두 달 뒤 3월에는 전북은행이 새만금공단지점을 소룡동지점과 통폐합했고, 그 해 12월 NH농협은행도 새만금공단지점을 나운지점과 합치며 발을 뺐다. 가장 최근에 단지를 벗어난 곳은 KB국민은행이다. 올 2월 군산국가산업단지점의 문을 닫았다. 빈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섰다.
군산 소재 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유치해봐야 조금만 지나면 경매에 들어가고 손실이 커지다보니 은행 산단 지점들이 일찌감치 발을 뺐다”며 “리스크를 떠안으면서까지 산단의 협력사들 여신을 해주려는 시중은행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단지 안에서는 그나마 전기차나 열병합발전소, 폐기물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 같이 돈 되고 안정적인 곳에만 대출을 열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철수한 은행들이 모두 전라북도와 군산시의 지방단치단체 금고 운영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은 2017년부터 군산시의 1, 2금고를 맡고 있다. 농협은행은 전라북도의 1금고도 맡고 있다. 전북은행은 전북의 2금고다. 매년 약 8조 원 규모의 예산을 굴려 수익을 낼 수 있는 권리에 비해 지역에 대한 책임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시금고를 맡기 직전 산업단지에 지점을 냈다가 문제가 터지자 2년 만에 바로 철수해 논란이 일었다. 국민은행이 국가산업단지점을 연 것은 2016년 10월이다. 약 두 달 뒤 국민은행은 군산 시금고에 선정된다. 43년간 금고를 맡아온 전북은행을 밀어내고 얻은 성과였다. 또 다른 군산 소재 은행 지점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2년 만에 철수한 것에서 애초에 시금고 선정만을 목적으로 들어갔었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